2024/10/02 15

나는 날고 싶다

영화 ’Walk, Ride, Rodeo를 보고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Walk, Ride, Rodeo’(걷고, 말 타고 경주하기)라는 영화를 보는 내내 교통사고 이후 지금까지의 내 삶이 오버랩되어 목이 메었다. 이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앰벌리 스나이더(Amberly Snyder)’는 세 살부터 말을 탔고, 일곱 살부터 경주에 출전하여 열여덟 살에는 전국 규모 대회에서 우승했다. 열아홉 살에 혼자서 트럭을 운전하여 유타주에서 콜로라도 주로 여행하는 도중에 교통사고로 허리 아래가 마비되었다. 여행 도중 와이오밍 주를 지나며 안전벨트를 풀고 옆에 놓인 지도를 보려고 하다가 운전 부주의로 차가 도로를 벗어나 경사로에서 일곱 번이나 구르는 사고를 내게 되었는데 몸이 차량 밖으로 튀어나와 길 가 울타리의..

교통사고 이후 2024.10.02

구급차 안에서

한국의 신문 기사를 보면 ‘모세의 기적’이라는 표현을 이따금 볼 수 있다. 구급차가 지나가는데 길거리의 차들이 모두 양쪽 갓길로 비켜줘서 구급차가 쉽게 지나갈 수 있었다는 보도를 할 때 이런 표현을 쓴다. 당연히 그리 해야 하는 일인데 기적이라는 표현을 쓴 걸 보면 한국에는 구급차에게 길을 비켜주지 않는 차들이 많은가 보다.  미국에서는 구급차의 경광등이 멀리서 보이거나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구급차 진행 방향 양쪽의 차들이 모두 일제히 길을 비켜 준다. 그게 미담이 아니고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니 모세의 기적이란 표현이라기보다는 밀물이나 썰물 정도로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같다. “하느님, 생사의 갈림길에서 촌각을 다투는 환자에게 길을 비켜주지 않는 인간들에게도 구급차 탈 일이 일어나게 해 주소서”라고 ..

교통사고 이후 2024.10.02

고통 없이 걷게 되지는 않더라

한쪽 다리에 의족을 낀 나는 평상시에는 양팔에 크러치(목발)를 짚고 걷지만, 때로는 급한 마음에 몇 발자국 정도는 크러치 없이 걸을 때가 있다. 크러치 없이 펭귄 걸음으로 허둥대며 걷는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놀라서 한마디씩 한다. “아니, 크러치 없이 잘 걷네요.” 별것도 아닌 일에 놀라는 사람이 우스워서 나는 그때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한다. “평지에서는 크러치 없이도 걸을 수 있어요. 안전하게 빨리 걸으려고 크러치를 쓰는 겁니다.” 예전에 체육관에서 트레이너와 함께 크러치 없이 중간에 쉬지도 않고 100m 트랙을 여덟 바퀴나 걸은 적이 있다고 말해도 믿지 않는 눈치다. 10여 년 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는 절단되고 오른쪽 다리의 뼈는 여덟 군데나 골절되었다가 여러 달이 지나서 그럭저럭 아문 ..

교통사고 이후 2024.10.02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반년이 지난 2005년 연말,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저녁이었다. 병상에 누워있는데 병원 복도 저 끝에서 들릴 듯 말 듯 노랫소리가 들렸다.Silent night, holy night!All is calm, all is bright. 귀 기울여 들어 보니 한두 사람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다. 아마 부근 교회의 성가대가 방문했나 보았다. 노랫소리는 차츰차츰 가까이 다가왔는데, 그들은 병실마다 들러서 노래하는 것 같았다.Round yon Virgin, Mother and Child,Holy infant so tender and mild, 해마다 듣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었지만, 다리가 절단되어 하루의 대부분을 병상에서 보내던 환자 신세로 듣던 그 노래는 평생 처음 들어..

교통사고 이후 2024.10.02

Mr. One Foot

내 블로그에 올린 ‘환상통’이란 글에 누군가가 댓글을 올렸다. 페이스북과는 달리 블로그에 댓글 올라오기란 가뭄에 단비 같아서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 보았더니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가 엉덩이 바로 밑에서 잘린 이후에 몇 달마다 겪는 환상통의 고통을 쓴 댓글이었다. 그는 그 고통이 그는 요로결석으로 겪는 고통보다 더 심하다고 썼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읽으며 마음 아파하다가 그의 아이디에 눈길이 갔다. ‘One Foot’이었다. 다리 하나를 잃은 걸 이런 식으로 드러내다니, 이게 허무 개그인지, 자학 개그인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아이디를 쓰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발 하나가 없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독각(獨脚)이라는 호를 쓴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유식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한글 ‘독각..

교통사고 이후 2024.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