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once was a child
living every day
Expecting tomorrow
to be different from today.
(옛날에 날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르길 바라며 살아가는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철도왕 윌리엄 밴더빌트의 딸 글로리아 밴더빌트가 지은,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제목은 ‘동화(Fairy Tale)’이다. 이 시의 제목이 내용과는 달리 ‘희망’이 아니고 ‘동화’인 것이 의아하지만, 그녀의 인생 역정을 보면 왜 그런 제목을 붙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글로리아가 두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녀는 지금 화폐 가치로 7,100만 달러의 유산을 받았다. 그녀는 열일곱 살에 한 첫 결혼을 시작으로 모두 네 번 결혼했는데, 그 밖에도 여러 명의 저명인사와 염문을 뿌렸다. 그녀는 시를 썼고,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동화 속 주인공처럼 태어나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고,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살았으니 그녀가 이 시에서 바란 오늘과 다른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재미있는 날이었을 것이다. 오래전에 그녀의 아버지가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기 위해 지었다는 엄청난 규모의 여름 별장을 구경했다. 거기에서 유아였던 그녀의 요람을 본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의문을 품는다. 동화처럼 산 그녀의 일생은 과연 행복했을까?
나는 쉰여섯 살에 날벼락 같은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고, 저세상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동화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지만, 평온했던 일상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체험을 하고 나니 뭐든 변화가 두려웠다. 그래서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을 변함 없이 평온한 삶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현재보다 더 나빠지지 않을 내일을 바라게 되었다. 망가진 몸이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랐고, 그런 몸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기는 글렀으니 그저 먹고살 걱정이나 없기를 바라며 살았다. 위의 시를 고쳐서 “옛날에 날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르지 않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로 쓰면 그게 사고 직후의 내 모습이었다. 그 당시에는 미래에 일어날 일이 까닭 없이 두려웠으니 그게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였던 듯싶다.
그러나 인생은 예고 없는 드라마, 삶이란 변화하게 되어 있었던지라 다시 살아나서 지금까지 1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며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거였다.
평생 휠체어를 굴리며 살 것 같았던 내가 의족을 끼고 목발 두 개를 짚고 걷게 되었다. 물론 일상생활에 불편한 점이 적지 않고, 포기해야 하는 게 많기는 하지만, 이렇게 살아서 매일 해 뜨고, 해 지는 걸 볼 수 있고, 계절의 변화를 즐길 수 있으니 그런 건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사고 후 얼마 동안, 매일 하루만 더 살아서 내일 아침, 해 뜨는 걸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던 내가 환갑은 물론 고희까지 맞을 수 있었다. 운이 좋다면 희수(77세) 찍고, 산수(80세) 지나 미수(88세)까지 맞을 것이며, 운이 나쁘면 작년에 세상을 떠나신 나의 어머니처럼 백 살까지 살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작은딸이 결혼하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큰 사위에 이어 듬직한 사위 하나를 더 얻게 되었으니 아들이 없던 나에게 아들 둘이 생긴 셈이다.
외손자 둘과 외손녀 둘이 태어나 자라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 다행히 그 아이들은 무척 잘 생겼고, 무척 똑똑하다. 가끔 그들 사진을 보고 혼자서 미소지으며 내가 손주 바보임을 확인한다.
언제나 어리게만 생각되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두 딸이 성공적으로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걸 지켜보고 있다.
연애편지 한 장 제대로 써보지 않았던 내가 적지 않은 글을 써서 여러 권의 책을 묶게 되었다. 그걸로 돈은 벌지 못했어도 내 삶의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지 15년 되는 날인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니 그동안 좋지 않은 일보다 좋은 일이 훨씬 더 많았다. 육신의 장애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에는 미련을 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애써 찾아서 즐기며 살아 보니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산다는 건 정말 좋은 거다.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디 이렇게 살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2020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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