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이웃 영감에게 애국심이란

삼척감자 2023. 9. 6. 06:35

노동절(9월의 첫 월요일) 아침 산책길에서 지그(Zyg) 영감을 만났다. 그는 나와 비슷한 연배라서 만나면 두어 마디 농담도 편안하게 나누곤 한다.

   “오늘은 휴일이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람.”

   “하기야 우리에게는 365일이 휴일이지.”

   “오늘 무척 더울 거라던데, 시원하게 지내소.”

 

돌아서며 생각하니 오늘 그가 내게 거수경례하는 걸 잊었다. 아침에 만나면 으레 왼손으로 경례를 붙이기에 오른손에 문제가 있나 보다 했는데 나중에 화단을 손질할 때 보니 멀쩡했다. 애국심을 표할 때는 오른손으로 경례하고, 나 같은 사람에게 친근감을 표할 때는 왼손으로 경례하는, 나름대로 지키는 원칙이 있는 듯하다.

 

그는 자그마한 화단 가꾸기로 소일하는데, 좁고 길쭉한 화단을 따라가며 열 개도 넘는 작은 성조기를 세워 놓아서 가까이 가 보아도 꽃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온통 성조기가 일 년 내내 화단을 뒤덮고 있다.

 

그 영감은 검은색이라서 묵직해 보이는 미제 SUV를 굴리는데, 뒤 범퍼에는 “나는 해병대 헌병이었다.”라는 길쭉한 표시판이 붙어 있다.

 

거수경례, 해병대 표시판, 성조기 그리고 미제 차, 이런 것들이 일관되게 그의 애국심을 드러내는 걸로 보아 나는 그가 장기 복무한 부사관이거나 장교 출신이거니 여겼다. 어느 날 산책길에서 그에게 군 복무를 몇 년 했는지 물어보았더니 딱 2년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하는데, 미국 해병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당연하지! 나는 아직도 해병이야.”라고 즉각적으로 대답하는데, 자부심이 느껴졌다. 젊었을 적에, 그것도 딸랑 2년간 복무한 사람이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아직도 해병대원이었다는 사실에 긍지를 갖고 여러 방식으로 애국심을 드러내는 게 참 신기하기도 했고, 이런 게 미국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모든 군대 중에서 해병대는 가장 존경받고 있다. 2023년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80%가 해병대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해병대가 이렇게 존경받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그들은 강인함과 전투에 대한 의지로 유명하다. 해병대의 모토는 라틴어로 "Semper Fidelis", "항상 충성하라"는 뜻이다. 이 모토는 해병대의 조국과 동료 해병대에 대한 헌신을 반영한다.

   둘째, 해병대는 강인하고 용감한 군대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해병대의 훈련은 매우 혹독하고, 그들은 항상 최전선에 서서 싸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셋째, 해병대는 오랜 역사와 명성을 자랑한다. 해병대는 미국 역사상 모든 주요 분쟁에서 싸웠고, 용맹과 희생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해병대는 미국 국민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누군가 자신이 해병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명예의 훈장이라는 뜻이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으로 꼽힌 여덟 가지 직업 중에서 소방관, 군인, 경찰 등 제복을 입고 복무하는 직업이 세 개나 포함되어 있다. 여행 중인 군인들을 위해 비행기 일등석의 승객들이 기꺼이 자리를 양보했다든지,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말없이 식대를 지불해 주었다든지 하는 미담은 미국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경찰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는 건 미국에서 상상하기 어렵다. 반항하다가는 경찰에게 사살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앞서 공공질서 유지에 필요한 공권력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군 복무를 군대에서 썩는다라고 표현한 어느 전직 대통령의 발언도 이해할 수 없지만, 경찰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으며, 그들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군인이나 경찰을 존중하지 않는 국가에서 애국심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질서 유지는 안중에도 없이 경찰의 공권력 행사를 방해하며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시위꾼들을 보니 고국의 미래가 걱정된다. 

 

(2023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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