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우리 응가 출세했네

삼척감자 2023. 11. 25. 06:56

정기 검진받으러 오라는 주치의의 연락을 받고 닥터 오피스를 방문했다. 나이 여든이 가까운 분이라서 방문하는 환자는 적고 시간이 남아돌아서인지 방문할 때마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도 많고 잔소리도 많이 하지만, 우리 부부의 건강을 챙기느라 그러려니 하고 고맙게 받아들인다.

 

삐쩍 말라서 한 방울도 아쉬운 내 몸에서 뽑는 피가 아깝기도 하고, 소변 받기가 귀찮아도 군소리 없이 주치의가 시키는 대로 따르지만, 검사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 게 문제다. 접수를 담당하는 미국인 직원에게 물어보면 직접 와서 받아 가라고 무뚝뚝하게 말하고, 의사에게 직접 전화하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별 문제 없으니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 거라며 짜증스러워한다. 그래서 한인 환자들이 하나둘씩 발걸음을 끊는다고 들었다. 그래도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잔소리가 미덥고 배탈이라도 나서 찾으면 맨손으로 내 셔츠를 걷어 올려서 맨몸을 앞뒤로, 위아래로 어루만져 주는 게 고마워서 환자를 염려하는 게 느껴져서 주치의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위 내시경과 장내시경을 받기를 권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성가신 일인지 익히 알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랬더니 대신 대변 검사를 권하기에 우물우물 승낙도 아니고 거부도 아닌 애매모호한 반응을 보이고 집으로 돌아온 이틀 후에 그리 크지 않은 정육면체 상자 두 개가 배달되었다. 그걸 뜯어보았더니 응가를 받는 큰 통 한 개와 작은 병 한 개 그리고 정체불명의 액체가 담긴 병 그리고 응가 채취 방법과 반송 안내문이 들어 있었다. 대강 훑어보고 에이, 더러워하며 구석에 치워두었더니 또 이틀 후에 응가를 빨리 보내라는 독촉문이 우편으로 왔다.

 

변기에 큰 통을 걸어두고 응가를 모은 다음 병마개에 달린 작대기로 조금 떼어서 작은 병에 넣은 다음 꼭 닫고, 큰 통에 담긴 응가에 정체불명의 액체를 붓고 뚜껑을 꼭 닫고, 상자를 봉한 다음 UPS에 갖다 맡기는 과정을 상상하기만 하여도 짜증이 났다. 초등학교 때 기생충 검사를 위해 성냥갑에 대변을 담아 오라고 했더니 귀찮아서 개똥을 담아왔다는 친구 생각이 났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이 더러운 작업을 시킨 내 주치의 얼굴이 떠오르며 욕이 나왔다. “에이, 그놈의 영감탱이, 별걸 다 시켜서…” 그래도 어쩌랴? 우리 부부는 거사 일자를 잡아서 변기에 걸터앉아 작업을 마치고 귀중품 다루듯이 소중하게 응가를 모아서 상자에 담아서 바로 UPS에 갖다주었다. 내 몸 안에 있던 거지만, 밖으로 나오니 그야말로 “Looks like shit, smells like shit, feels like shit”이라서 한시바삐 우리 집에서 떠나보내고 싶었다.

 

신선할 때 검사를 마치기 위해서인지 “Next Day Air” 라벨이 붙여진 상자를 멀리 떨어진 위스콘신주에 있다는 어느 도시로 발송했다. 그다음 날, 발송 후 22시간 만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나니 우리 응가 출세했네. 비행기도 타보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어가며 비슷한 연령대의 지인들이 병에 걸렸다거나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게되니 건강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런데 건강이 뭐 별건가. 잘 먹고 잘 싸는 게 건강의 기본이 아니던가?

 

부디 우리 응가가 검사 잘 받고 이상 없음이라는 희소식을 전해주면 좋겠다. 이번에도 영감탱이(주치의)가 검사 결과를 확인하려는 우리 전화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지 않았소라고 짜증을 내도 언짢아하지 말아야지.   

 

(2023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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