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이타카로 가는 길

삼척감자 2024. 1. 15. 11:47

작년 6월에 캐나다 토론토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인 호숫가에서 가족 휴가를 보내기로 하고 나니 이참에 자동차를 몰아서 왕복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을 전담할 아내의 체력이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편도로 600마일(960km) 정도라 하루에 너덧 시간 정도, 그것도 두어 시간마다 쉬면서 운전하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을 거로 생각해서 비행기 탑승 대신 자동차 운전을 선택했다.

 

우리가 사는 뉴저지주에서 떠나 펜실베니아주를 지나 뉴욕주를 거쳐서 캐나다로 가는 코스인데 지도를 보고 뉴욕주 북부에서 이타카를 지나는 도로와 시라큐스를 지나는 도로 중에서 별로 망설이지 않고 이타카를 지나는 도로를 선택했다. 아마도 내 기억 속에 오디세우스(라틴어로는 율리시즈)가 깊이 각인되어 있어서 그렇게 이끌렸나 보다. 그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으로서 이타카(Itacha)의 영주이자, 트로이 전쟁의 영웅(트로이 목마의 고안자)이자, 그의 이름을 딴 그리스 서사시의 주인공이다. 20년간의 파란만장한 유랑 끝에 고향에 돌아와 그의 아내를 넘보던 도당에게 복수했든 전설적인 인물이다.

 

콘스탄티누스 카바피스의 이타카로 가는 길은 이렇게 시작된다.

네가 이타카로 가는 길을 나설 , 기도하라,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라이스트리콘과 키클롭스 포세이돈의 진노를 두려워 마라.”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라는 거창한 여행보다는 빠른 길을 택하여 아타카에 도착해서 편안하게 쉬고자 했던 계획은 좀 어긋났다. GPS가 시키는 대로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좁고 가파른 길이 지루하게 계속 이어지는데 비까지 뿌려서 예정보다 한참 늦은 시간에 이타카에 도착했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명문인 코넬대학교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그것 말고는 별로 내세울 게 없다는 작은 도시 이타카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토론토로 가는 길에도 카유가 호수를 지나 좁고 가파른 길이 이어지니 마음이 답답했다. 코넬 대학교 학생들은 이런 오지에서 공부 말고는 달리 할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이타카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호숫가에서 더 쉬었다 가고 싶다는 아내를 재촉하여 갈 길을 서두르며 다짐했다. “나 다시는 이타카에 오지 않겠다.”라고.    

 

애초에 왕복 모두 이타카를 거치기로 하고 호텔 예약을 해두었지만, 돌아올 때는 이타카를 피하고 싶어서 캐나다에 도착하자 예약을 취소하고 시라큐스에 있는 호텔로 변경했다. 시라큐스를 거쳐서 돌아오는 길은 대부분의 길이 고속도로라서 시간도 단축되어 길이 넓어서 마음이 편안했다. 그러고 보니 시라큐스(Syracuse)도 그리스 신화와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뉴욕주의 지명에는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게 참 많다. 자료를 찾아서 나열해 보면 그 숫자가 적지 않아서 놀라게 된다.

이타카, 시라큐스, 트로이, 리산드로스, 헥토르, 마라톤, 델포이, 율리시스, 아폴로, 아테나, 아레스, 디오니소스, 헤파이스토스, 헤라, 헤르메스, 제우스……

 

그리스계 이민자의 후손이 많아서 뉴욕주의 지명을 지을 때 그들이 큰 영향을 미쳤을까? 아니다. 뉴욕주에 사는 그리스계 주민은 37만 명 정도라고 하니 한국계 주민 22만 명에 비해도 대단한 숫자는 아니다. 아마도 그리스 문명이 서양 문명에 미친 영향이 지대했기 때문에 그게 지명을 짓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2024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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