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니 엄마 안녕하시노?

삼척감자 2024. 3. 22. 23:13
에바(Eva)는 내가 아침 산책길에서 자주 만나는 이웃 할머니다. 핀란드에서 오래전에 이민 왔다는데, 북유럽 여인은 대개 키 크고 몸매가 예쁠 거라는 내 선입관과는 달리 키가 작고 옆으로 벌어져서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북구 미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핀란드 국민은 루터파 개신교도가 대다수라던데 이 할머니는 뜻밖에도 통일교 신자라서 교회에서 찍어주는 대로 통일교도인 남자와 결혼했다고 한다.
아침마다 산책길에서 만나면 생글생글 웃으며 늘 똑같은 말을 똑같은 순서로 던진다. 우선 “안녕하시냐?”고 상냥하게 물어 본 다음, 날씨가 좋다든가, 아니면 춥다든가 하는 말을 한 다음에는 으레, 지극히 상냥한 어조로 “How is your mommy(니 엄마 안녕하시노)?”라고 묻는다. 여기서 그녀가 말하는 엄마는 돌아가신 나의 생모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남들이 대개 Wife라 불러주고 마당쇠인 내가 마님으로 모시는 분을 이른다.
이 마지막 질문에 나는 늘 머뭇거린다. 에바는 아내가 장애인인 나를 좀 시원치 않은 외아들처럼 여기며 심청이가 심봉사 돌보듯 보살필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겠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하다. 마님의 은혜는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으며 아내는 우리 어머니와 동급이라는 황공스러운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아니면 ‘우리 마님, 보기와는 많이 달라.”라고 진실을 밝혀야 할지 늘 갈등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럼 당신이 데리고 살아보슈.”라고 내뱉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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