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5 15

나만을 위한 봉성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오후에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신부님 한 분이 병실로 들어오시기에 깜짝 놀랐다. 키가 크고 허리가 약간 구부정하며 나이는 80세쯤 되어 보이는 미국인 신부님이었다. 신부님께서 왜 갑자기 오셨는가 의아했는데 간호사의 설명으로 전후 사정이 이해되었다.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미국인 신부님이 오셔서 입원 중인 환자들을 위해 미사를 바치기로 한 날이 그날이었다. 몇 달만에 미사 참례를 하기 위해 간호사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미사드리기로 되어 있는 방에 가서 미국인 신자들 몇 명과 함께 신부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30분 이상을 기다렸는데, 신부님께서 고속도로가 막혀서 더 늦어질 것이라고 연락 해오셨다. 폐렴에서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서..

교통사고 이후 2024.09.25

I Love You

2005년 12월 27일 이른 아침에 또 수술대에 올랐다.  LA에서 일부러 온 작은딸, 필라델피아에서 온 큰딸 내외, 그리고 아내 등, 온 식구가 새벽같이 내가 입원해 있던 재활원으로 와서 나를 이송하는 구급차를 따라 대학병원으로 와서 수술 수속을 도와주었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대학병원에 입원한 어느 날 밤, 잠자는 동안에 저녁으로 먹은 음식이 역류하여 토하면서 일부가 기도로 들어가는 바람에 급성 폐렴에 걸려 스스로 숨을 쉴 수 없게 된 사건이 있었다. 의료진이 급히 목 한가운데를 뚫고 산소 호흡기를 연결하는 와중에 기도에 삽입된 산소 호흡기의 호스가 성대를 손상시켜서 목소리를 전혀 낼 수 없게 되었고, 삼키는 근육마저 손상을 입어서 먹고 마시지 못하게 된지 6개월이 지난 날이었다.  가족들과 수술..

교통사고 이후 2024.09.25

일어나 걸어라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 하나를 잃고 하나는 크게 다친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시간이 흐르니 휠체어에 앉아서 지내는 생활에도 적응되어 가고 끔찍했던 기억도 희미해지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도 두 다리로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꿈을 꾸고는 깨어나서 허무해하곤 한다. 걷는 연습을 하다가 가끔 다리 하나가 없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는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 다리 하나로 사는 데 적응이 될 것이다. 요즈음은 재활원에 다니면서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의족을 끼고, 보행 보조기(워커)를 짚고 연습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지만 걸어서 성당 2층에 쉽게 올라갈 수 있는 날이 머잖아 오리라 확신한다. 주님께서 "일어나 걸어라. 내가 네 손 잡아 주리라."하..

교통사고 이후 2024.09.25

원뿔 속을 날다

교통사고를 당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 당시의 상황은 늘 머릿속에 남아 있다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불쑥불쑥 되살아나서 나를 괴롭힌다. 의학 용어로 심적 외상(psychic trauma)에 해당한다는데 사전에서는 이 용어를 “몹시 불쾌하고 강렬한 체험(심적 외상)은 자신의 정신적인 안정을 위협하여, 쉽게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그것은 억압이라는 기제(機制)에 의하여 의식 세계에서 무의식 세계로 전환된다. 무의식적으로 억압된 심적 외상은 콤플렉스를 형성하여 장래 그 사람의 정신생활에 영향을 끼친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사고를 당할 때의 상황은 비디오가 돌아가듯이 정상 속도, 저속, 고속, 정지, 반복 재생 등 여러 가지로 머릿속에서 수없이 재생되고, 밤에 자다가 재생이 되면 악몽도 그런 악몽이 없다..

교통사고 이후 2024.09.25

너 정말 나보다 더 억울하냐?

내가 좋아하는 연한 회색 정장을 입고, 작고 아름다운 성당 안에서 발뒤꿈치를 들고 혼자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오늘 성당에 갔는데, 날씨가 아주 좋아서….”라는 아내의 말이 들렸다. 눈을 떠보니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고, 아내가 옆에 앉아 있는데 모든 게 낯설었다. 여기가 어딜까? 참, 내가 차에 치였었지. 땅바닥에 쓰러지고 구급차에 실렸었는데 다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몸을 일으켜 보려고 애써도 기운이 너무 없어서 꼼짝할 수 없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의식을 잃은 지 두 달쯤 지난 후에 깨어난 어느 날이었다. 아내에게 말하려고 해도 입술만 달싹거릴 뿐 소리는 나지 않고… 계속해서 진통제(모르핀?)를 맞은 탓이었는지 머리는 몽롱하고, 시간의 흐름도 느끼지 못하여 아침인가 하면 밤이고, 밤인가..

교통사고 이후 202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