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5 15

나는 하늘을 날았다

두 딸이 어린아이였을 적에 즐겨 본 만화 영화 중에 덤보 (Dumbo)가 있었다. 그 영화는 딸들뿐만 아니라 나도 워낙 좋아해서 수십 번을 함께 보았는데 귀가 유달리 커서 놀림을 받고 자라던 아기 코끼리 덤보가 까마귀의 도움을 받아 하늘을 날게 된다는 얘기가 재미있었다. 이 영화는 70년 전에 제작되었지만, 아직도 전 세계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날개가 없고 귀가 작은 나도 날아 본 적이 있다.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자르는 대수술을 받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두 달 후에 깨어난 지 얼마 후였다. 당시에는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강력한 진통제를 투여해서인지, 아니면 의식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아서였는지 늘 정신이 몽롱해서 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고,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았다. 가족이나 ..

교통사고 이후 2024.09.25

제삿날이 될 뻔했던 날

5년 전 오늘, 그러니까 2005년 6월 27일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생과 사의 경계선을 오락가락하다가 하느님 나라로 가기에는 때가 일렀던지 이 세상에 다시 머무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오랜 세월이 흐른 것 같은데 이제 겨우 5년이 흘렀을 뿐이다.  매일 밤, 오늘 밤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초조하고, 불안하고, 마음이 바빴었는데 다시 살아나서 여러 해가 지나니 이제는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다. 오늘이 어쩌면 제삿날이 될 수도 있었는데 고맙게도 다시 태어난 날이 되었다. 생과 사가 내 뜻대로가 아니고 모두 우리 주님이 주관하심을 환갑이 지나 어렴풋이 깨달았으니 뒤늦게 철이 들어가는 걸까?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행복이..

교통사고 이후 2024.09.25

저를 낫게 해 주소서. 저를 살려 주소서

-히즈키야의 발병과 치유(이사야서 38장)를 읽고- 유다 왕국의 히즈키야 임금이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히즈키야가 이 말을 듣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말씀드렸다.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저를 낫게 해 주소서. 저를 살려 주소서.’” 그러고 나서 히즈키야는 슬피 통곡하였다.  그러자 주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내렸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자,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병이 들었다가 그 병에서 회복된 임금 히즈키야는 다음과 같이 주님을 찬미했다. “보소서, 저의 쓰디쓴 쓰라..

교통사고 이후 2024.09.25

음식남녀를 보다가

대만 출신 이안 감독(‘와호장룡’의 감독)의 ‘음식남녀’를 보기 전에 이 영화의 미국 버전인 ‘Tortilla Soup’을 먼저 보았다. 재활원 입원 중에 큰딸이 휴대용 DVD Player를 사다 주면서 DVD를 여러 장 갖다주었는데, 그중에 한 장이 바로 미국 버전의 ‘음식남녀’였다. ‘Tortilla Soup’은 남미 출신 가족의 이야기로서 유명 호텔 주방장 출신인 홀아버지와 세 딸의 이야기를, 음식을 매개체로 해서 가족의 사랑이 맺어지고, 확인되는 영화인데 나중에 이안 감독의 원본을 보면서 비교해 보아도 두 작품의 내용이 거의 같고 재미나 짜임새가 별로 차이가 없었는데 개 인적으로는 미국 버전이 더 재미있었다. 전체적인 줄거리에 관심을 두고 재미있게 보기는 퇴원 이후에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였지, ..

교통사고 이후 2024.09.25

병원에서 만난 외국인들

교통사고를 당해서 대학병원에서 석 달, 그리고 재활원에서 석 달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문병하러 오시는 분들 말고는 내내 외국인들과 함께 지냈다. 그 당시에는 성대가 망가져서 말을 할 수 없었기에 그들과는 손짓, 표정 그리고 아주 드물게는 필담으로 의사 소통하였으므로 나는 주로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다. 퇴원하고 여러 달 동안 통원 치료와 재활 훈련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요즈음 한가해지니까 병원에서 만난 이들이 가끔 생각난다.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한 패트리샤 생각이 갑자기 나서 그녀가 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로 전화했더니 무척 반가워한다. 이제 워커를 짚고 걷는다고 했더니 연방 "Steve, God is great!"라고 감격스러워하더니 우리 딸들과 사위의 이름까지 기억해 내며 안부를 물어보는 데..

교통사고 이후 2024.09.25

백만 불짜리 미소

“Handbook for the Ministers of Care”라는 책에서 다음 글을 보았다. 원문은 영어인데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팔, 다리를 절단하거나, 유방 또는 다른 신체 장기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사람은 외모가 흉해졌다는 생각도 들지만, 자신의 가치가 손상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일을 겪은 사람은 몸이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고 해당 부위가 온전하게 대치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육체적인 고통 말고도 이러한 손상은 정신적인 충격을 수반한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변화에 대처할 수 없어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슬픔에 빠지게 된다. 또 우울증에 빠져서 재활 훈련 등을 완강히 거부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러한 손상에 대하여 보이는 반응은 비탄, 우울증 그..

교통사고 이후 2024.09.25

다시 욥기를 읽으며

얼마 전 일이었다. 병원에 다녀오는데 고속도로에서 차량이 밀리기 시작했다. 웬일인가 싶어서 차창 밖을 내다보았더니 차 바로 옆 2미터쯤 떨어진 곳에 사람이 누워 있었다. 마침, 차가 정지 상태였기 때문에 자세히 보았더니 방금 숨이 넘어간 듯한 시신이었다. 머리가 깨어졌는지 피가 잔뜩 흘러나와 있고, 반듯이 누워서 하늘을 향한 눈은 반쯤 감겨 있는데, 허름한 옷차림, 낡은 신발,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던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좀 떨어진 곳에는 가해자로 보이는 몇 사람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여느 교통사고와는 달리 망가진 차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지역 신문을 보았더니 피해자는 23세 된 남미 이민자인데 일용직 노동자로서 고속도로 옆에서 풀을 깎고 있다가 지나가던 트레일..

교통사고 이후 2024.09.25

내가 뭘 잘못했어요?

어릴 적에 나는 성격이 유별난 아이였다. 자식들이 말썽을 부리면 어머니는 야단을 치시고는 잘못 했다고 비라고 했는데 형제 중에서 나 혼자만 끝까지 “내가 뭘 잘못했어요?” 하고 바락바락 대들고 따지는 통에 매를 벌곤 했다. 성질을 건드리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참 다루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어릴 적에 하도 많이 야단맞고 매 맞고 자란 탓인지 나이 들어서도 어머니와의 관계가 서먹서먹한 편이다. 지금도 어쩌다 친척을 만나면 어릴 적의 내 못된 성질을 두고 화제로 삼는 통에 민망스럽기 짝이 없다. 이제 와서 누굴 탓하겠는가? 모두 내 성질머리가 못된 탓이었지.  늘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으며 살다 보니 어디에 부딪혀서 코피가 나면 이불 솜을 꺼내서 코를 틀어막거나, 어디든 상처를 입..

교통사고 이후 2024.09.25

정신은 오락가락, 기억은 뒤죽박죽

몇 년 전 교통사고가 났을 때, 구급차에 실리며 의식을 잃은 지 두 달 후에 정신이 되돌아왔다. 그 이후 몇 주간은 기억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문병객을 잘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 기간에 문병하러 오신 분들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고 나중에 아내가 매일 수첩에 적어 둔 명단을 보고서야 다녀간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래도 몇 사람은 기억나는데,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분들은 오히려 기억나지 않는다. 혼돈상태에서는 기억도 뒤죽박죽인가 보다. 기억나는 몇 분 이야기.  방안이 어둑어둑하고 문이 닫혀 있어서 답답하다. 머리는 무겁고 목이 마르고 입안이 타니 오렌지 주스나 벌컥벌컥 들이켰으면 좋겠는데. 여기가 어딜까? 내가 왜 여기에 와 있지? 자동차에 치이고, 구급차에 실리고, 그리고는..

교통사고 이후 2024.09.25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는 길고도 난해한 시라서 끝까지 정독한 기억은 없으나 마지막 연의 첫 구, ‘바람이 인다! … 살려고 애써야 한다!’는 좋아하는 구절이다. 불문학자 김현은 원문 ‘Le vent se lève! . . . il faut tenter de vivre!’ (영역으로는 ’The wind is rising! . . . We must try to live!’)을 ‘바람이 인다! … 살려고 애써야 한다!’로 번역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람이 분다! … 살아야겠다!’ 라는 번역이 더 좋다. 시인 남진우는 그의 시에서 이 구절을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바람이 불지 않는다 / 그래도 살아야겠다.’로 고쳐서 번역했다.  여러 해 전에 교통사고를 ..

교통사고 이후 202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