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30 15

혼수상태에 빠져 보니

날벼락 같은 교통사고로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다. 사고 직후에 많은 출혈로 바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병원에 실려 가 입원해 있는 동안에 다리 하나를 절단하고, 처참하게 망가진 몸 여기저기를 꿰매고, 기우고 때웠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고 후 한 달이 지났다고 했다. 그리고 하루인가 이틀 지나서 다시 심장이 멎고 호흡에 문제가 있어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기도를 절개하여 인공호흡기를 연결한 상태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다시 한 달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의학사전에는 혼수상태(Coma)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혼수상태(昏睡狀態)는 의학에서 깊은 의식불명 상태를 말한다. 혼수상태에 있는 사람은 깨울 수가 없고 일반적으로 고통이나 빛, 소리 등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또한, 건강한 사람과 달리..

교통사고 이후 2024.09.30

죽지 말아야 할 이유

먼저 주일 아침에 화장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열심히 면도하다가 깜빡 방심한 사이에 의족의 무릎 부분이 꺾여서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행히 어디 부딪친 데는 없었다. 변기를 짚고 혼자 일어서 보려고 끙끙거렸지만, 애당초 무리한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큰 소리로 아내를 불러 도움을 청했지만,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도 없는 나 자신이 초라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 언제부터 이리 꼬여 버렸나? 사고로 다리를 잃고 의족을 낀 이후로 그런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처음 의족을 낀 날 아파트 복도에서 아내의 도움을 받아 걷는 연습을 강행하다가 넘어지며 절단하지 않은 다리뼈가 부러져서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가느라 소란을 떨었고, 그 이후 뼈가 아물 때까지 서너 달 동안 고생했다. 두어 해 전 ..

교통사고 이후 2024.09.30

죽고 싶었다

잠에서 깨니 새벽 두 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잠들기 전에 인터넷 신문에서 본 유명한 야구 해설가였던 고등학교 동창생의 자살 속보가 떠올랐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자살을 택했겠나? 몇 년 전에 죽을 고비도 어렵게 넘겼다던데 이처럼 허망하게 가다니.  그리고 최근에 검진을 통해 몸에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교우 두 분의 얼굴도 떠올랐다. 재검진, 수술, 치료 등의 힘든 과정을 거칠 그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오랫동안 환자 노릇을 해 본 나는 그게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과정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오래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두 달이 지나 의식을 찾고 보니 병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느님을 원망한 이가 나뿐이었을까? 밤에 병실에 혼자 있을 때는 “왜 하필이면 내가 이런 사고를 당해야 했느냐?”고 ..

교통사고 이후 2024.09.30

오래된 레시피

우리 어릴 적에는 남자가 부엌에 들락거리면 사내 녀석이 그러다가 X알 떨어진다며 어른들이 야단쳤다. 그런데 지금은 시대도 바뀌었거니와 사는 곳도 미국이니 남자가 부엌에서 주부의 일을 도와주면 자상한 남자라고 칭찬을 받을지언정 흉잡힐 일은 아니다.  나도 나이 들어가며 부엌 출입이 잦아졌다. 배꼽 밑의 호두 알 두 쪽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할아버지 노릇에는 별로 지장이 없거니와 어쩌다 성당에서 행사가 있거나 교육에 참석할 일이 있어서 아내가 집을 비우더라도 혼자서 간단한 음식이라도 차려 먹어야 하기에 생존에 꼭 필요한 정도로, 예를 들면 라면이라는 음식 정도는 직접 끓여 먹는다.     부엌 출입을 시작하며 라면 끓이기로 시작한 내 요리 솜씨는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다지 진전이 없다. 라면이라야 냉장고에..

교통사고 이후 2024.09.30

생명이 있는 한 희망 역시 존재한다

올해 6월로 교통사고를 당한 지 만 10년이 된다. 거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니 그것도 부활이라고 혼자 우기며 10주년 기념을 핑계 삼아 어디로든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는데, 내 생각을 알아챈 것처럼 함께 크루즈 여행을 가지 않겠느냐고 제의한 가족이 있었다. 다 짜놓은 계획에 끼어들기만 하면 되니 골치 썩일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생각했던 대로, 여행하면서 그분들이 이끄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니 떠날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편하기 짝이 없었다.  사고 직후 입원할 때부터 퇴원할 때까지 거의 매주 문병하러 왔던 고마운 분들과 함께 부활 10주년 여행을 떠나게 되니 이보다 뜻깊은 일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여행하는 내내 마음속 깊이 그분들의 따뜻한 배려에 감사드렸다. 여행 중에 시간 나는 대로 볼..

교통사고 이후 2024.09.30

몸과 마음의 환상통

며칠 동안 특별한 까닭도 없이 깊이 잠들지 못했더니 피곤했다. 간밤에는 모처럼 깊은 잠에 빠져있는데 다리가 계속 찌릿찌릿한 게 느껴졌다. 비몽사몽 간에 시계를 보니 두 시가 좀 넘은 새벽이었다. 열한 시에 잠자리에 들었으니 고작 세 시간 남짓 잔 셈이다. 다시 잠을 청했으나 전기 충격과도 같은 통증이 계속되어 편히 자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왼발 뒤꿈치 복판에 온 불청객이었다. 어쩌다 환상통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오면 잠을 이루기 어렵다.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가 무릎에서 절단되었으니 내 왼쪽 다리에서 발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사라진 몸 일부에 생생한 통증을 느끼는 기분은 정말 허깨비에 홀린 것 같다. 그래서 환상통을 영어로 phantom pain이라고 하나 보다. 환상통이 찾아오면 물러가..

교통사고 이후 2024.09.30

두 달 동안 자다가 깨보니

오늘이 교통사고를 당한 지 꼭 10년째 되는 날이다. 해마다 오늘이 오면 내 제삿날을 맞은 것처럼 숙연한 마음으로 사고 날 때부터 다시 걷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 본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새 생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도와주신 분들 그리고 입원 중에 찾아 주신 분들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사고를 당하고 두 달 동안의 긴 잠에서 깨어나 보니,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모든 게 꿈인지 현실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래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니 고통은 심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게 되었다. 왼쪽 다리는 절단되었고, 오른쪽 다리뼈는 여러 도막으로 부러져 있었고, 성대가 손상되어 목소리를 잃었고, 배에는 음식을 주입하기 위한 튜브가 연결되어 있었고..

교통사고 이후 2024.09.30

가거라 환상통이여, 영원히 가거라

얼마 전에 ‘환상통’이라는 독일 영화를 보았다. 환상통이란 전쟁, 사고 또는 질병으로 신체에서 잘려나가거나 수술로 절단해 버려서 없어진 부위에서 나타나는 통증을 말한다. 왼쪽 다리가 절단된 나도 칼로 찌르는 듯한 환상통이 1년에 몇 차례씩 예고 없이 찾아오면 짧게는 열두어 시간, 길게는 사나흘씩 지속하는 고통에 시달리기에 이 영화에 깊이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영화가 바로 내 얘기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절단하고 처음 겪는 환상통이 고통스러워서 병상에서 몸부림치는 주인공을 보고 그의 가족과 의사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그는 지금 잘려나가서 없어진 다리 부분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겁니다. 그걸 환상통이라고 하는데, 지극히 정상적인 증상입니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교통사고 이후 2024.09.30

You prayed. I am here.

며칠 전에 “천국에서의 90분(90 Minutes in Heaven)”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단 파이퍼(Don Piper)라는 목사가 교통사고 직후의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을 쓴 책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인데, 줄거리를 읽어보고 천국이라는 단어에 끌려서 영화를 보게 된 게 아니라 교통사고라는 단어에 끌렸다. 그가 겪은 고통이 나 자신의 체험과 어쩐지 비슷할 것 같아서였다. 오래전에 직장 동료의 권유로 자칭 목사라는 펄시 콜레가 쓴 “내가 본 천국”이라는 책을 읽고 난 후로는 이런 종류의 책이나 영화에 흥미를 많이 잃어버렸다. 그가 다녀왔다는 천국은 도로가 빛나는 금으로 덮여 있었고, 자신이 들어가 살 아파트는 황금으로 지어져 있었고, 큰 성은 보석으로 장식되었더라는 황당무계한 ..

교통사고 이후 2024.09.30

세상 끝까지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주일 아침 일찍 친척 어른들 두어 분과 함께 먼 길을 다녀온 적이 있다. 아버지와 같은 항렬인 친척 아저씨가 토지 문제로 분쟁이 생겼는데 평생 농사만 짓던 분이라 세상 물정에 어두워 펜대라도 잡아 본 아버지의 도움을 청한 것이다. 현지에 가서 지적도와 실제 토지를 비교해 보고 농토의 일부를 무단 사용하던 사람에게서 소작료를 받아내려고 작정한 그 아저씨의 뒤를 따라 길을 떠났다.  강원도 시골에서 자라서 일 이십 리 거리야 늘 걸어 다녔고 산을 탈 일도 잦았지만, 왕복 여덟 시간 거리는 어린 소년에게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사람이 걷다 보니 저절로 생겨난 듯한 산길은 두 사람이 비켜서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았고 가도 가도 키 작은 소나무만 드문드문 보일 뿐 온통 붉은 흙이 드러난 산길을 ..

교통사고 이후 2024.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