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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왕국’을 읽고 나서

1988년에 출간된 최인호의 역사소설, ‘잃어버린 왕국’을 이제서야 읽었다. 백제의 멸망 과정을 읽으려니 안타깝기도 하고, 나이 들며 떨어진 기억력 탓에 읽다 보면 앞서 읽은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흐름이 자주 끊겨서 몇 달에 걸쳐서 겨우 다 읽고 나니 최인호의 천재성에 새삼 감탄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일본의 역사 왜곡과 백제의 역사를 파헤치고 있다. 작가는 일본의 역사 왜곡을 폭로하기 위해 수백 권의 일본 서적을 읽고, 일본 각 지방을 답사했다. 이 소설은 광개토대왕비의 비문 변조, 칠지도(七支刀) 명문의 견강부회식 해석, 과장과 오류투성이인 일본서기 등을 중심으로 고대의 역사를 하나씩 풀어가며 백제와 왜(일본) 간의 관계를 파헤치고 있다. 역사 왜곡에 관하여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니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이것저것 2023.05.28

하늘이 부르실 때

100세 장수 시대라고는 하나 남녀 평균 수명이 90세가 넘는 나라는 없으니 장수 국가로 손꼽히는 나라의 국민도 대개 80대에 세상을 떠난다고 봐야 한다. 남자의 평균 수명만 놓고 보면 이들 국가의 남자들은 대개 80세를 전후하여 세상을 떠난다고 하며, 건강 수명만 보면 70대 중반 이후에는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침 산책을 나서다가 옆집에 사는 잭(Jack)을 만났다. 늘 그렇듯이 우는 듯 웃는 듯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짓는 미소, 느릿느릿 걷는 발걸음이 측은해 보인다. 일주일에 세 번 받는다는 신장 투석을 받으러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매번 네 시간씩 걸린다는 그 과정이 얼마나 지겨울까? 일흔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신장을 이식받는 건 생각하기 어려울 테니 하늘이 부를..

미국 생활 2023.05.25

승객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아기 엄마의 마음

며칠 전에 Dasha Taran이라는 분이 Quora Digest에 올린 글을 옮깁니다. 서울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의 비행시간은 열 시간 조금 더 된다. 아래 사진의 아이 엄마는 200명이 넘는 승객 모두에게 플라스틱 봉지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 봉지 안에는 과자와 껌과 귀마개가 들어 있었는데, 그것들은 그녀의 넉 달 된 아기가 비행 중 시끄럽게 굴 경우를 생각해서 미리 미안한 마음을 표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 봉지 안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힌 쪽지도 들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장우입니다. 저는 태어난 지 넉 달 되었고요, 오늘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가고 있답니다. 저는 조금 긴장되어 있고 좀 두려워요. 이번이 제가 태어나고 처음 하는 비행기 여행이거든요. 제가 울거나 소란을 ..

이것저것 2023.05.20

예수님과 함께 걷기

뉴저지 메이플우드 성당의 50주년 기념집 제작의 편집에 관여하며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최종 작업으로 기념집의 제목을 한국어와 영어로 정해야 하는데 몇 분의 의견을 종합하여 영어 제목을 “Walking with Jesus’로 정했다. 요즈음 화제가 되고 있는 AI에 이 제목이 어떤지 물어보았더니 아래 내용과 같은 답변을 받았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AI의 도움을 받아야 할 미래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는 미래에 AI의 지배를 받게 되는 건 아닐까? (아래 내용은 AI가 영문으로 답변한 걸 제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걷기”는 우리 삶에서 그분을 따르는 걸 비유한 표현으로서,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살고 그분이 보여 주신 모범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걸으면 우..

신앙 생활 2023.05.19

몸에서 나는 냄새

전쟁을 전후하여 태어난 우리 세대가 어릴 적에는 세숫비누와 빨랫비누의 구분이 없었다. 작은 벽돌만 한 무궁화 표 빨랫비누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목욕탕에 갈 때도 그걸 갖고 가서 온몸을 씻었다. 작가 강신재의 단편 소설 ‘젊은 느티나무’는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소설에서 그는 대단한 부자 아버지를 두었으니, 그에게서 나는 비누 냄새는 무궁화 표 빨랫비누 냄새가 아니고 외제 세숫비누의 향긋한 냄새였을 것이다. 작가는 이 문장을 통해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끌리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 문장이 생각난 건 어머니날을 며칠 앞두고 출장 온 큰딸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였다. 지중해식 식당에서 어머니날 축하 요리를 즐기며 외손자와 두 외손녀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가족 이야기 2023.05.12

내 기억력도 이제는 믿을 게 못 된다

5월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갑자기 5월에 생일을 맞는 외손자가 생각났다. 작은딸의 외동아들인데, 빼어난 유머 감각으로 학교에서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에게 인기 짱이며, 우리 부부와 화상통화를 할 때마다 한국어로 인사를 해서 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귀염둥이다. 그래서 아마존을 열심히 뒤져 선물 한 가지를 골라서 작은딸에게 이메일로 어떤지 물어보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록 답장이 없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내 실수를 깨달았다. 그 아이 생일이 5월이 아니고, 7월인 것을. 5월에는 딸 둘, 아들 하나를 둔 큰딸네 막내딸의 생일이 들어 있다.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보니 6월에는 큰딸의 아들 생일이, 11월에는 큰딸의 큰딸 생일이 들어 있고, 1월에는 작은딸, 2월에는 큰딸, 7월에는 ..

가족 이야기 2023.05.04

나이 들어가니 걱정거리는 늘고

아침 산책길에서 자주 만나는 시(Shi)할머니는 중국 태생이고, 추(Chu)할머니는 대만 태생이다. 두 분 모두 84세로 동갑인데, 공교롭게도 생년월일조차 똑같으니 무슨 운명의 끈으로 연결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두 분은 같이 다닐 때가 많고 거의 매일 아침 함께 산책한다. 아침마다 팔을 앞뒤로 힘차게 휘두르며 4 Km가 넘는 거리를 걸으니 그 나이에 참 대단한 일이다. ‘시’ 할머니는 20여 년 전 바람피우던 남편을 내쫓았고, ‘추’ 할머니는 오래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살지만, 두 분은 시도 때도 없이 오가며 외로운 사람끼리 서로 의지하며 지낸다. 며칠 전 아침에 ‘시’ 할머니 혼자서 산책하기에 ‘추’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더니, 그분은 다리가 아파서 그날은 걷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

미국 생활 2023.05.02

우리 이웃에 사는 백인 영감

우리 이웃에 사는 백인 영감의 차 뒤 범퍼에는 “나는 해병대 헌병 출신이다”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의 집 앞에 있는 작은 화단에는 크고 작은 성조기가 여남은 개나 꽃혀 있는데, 한쪽 끄트머리에는 조금 큰 성조기와 해병대 깃발이 일 년 내내 펄럭인다. 궁금해서 얼마 전에 언제, 얼마 동안 해병대원으로 복무했는지 물어 보았더니 겨우 2년, 그것도 아주 오래 전, 젊었을 때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해병대원이었음을 긍지로 여기고, 조국을 위해 복무했음을 자랑스러워하며 애국심을 드러내는 그가 대단해 보였다. 미국인들은 제복을 입은 군인, 경찰, 소방관을 존경하며, 군 제대 후에도 연금, 의료 혜택 제공 등에 많은 배려를 해 준다. 그러니 그 영감이 군 경력을 그렇게 자랑스러워할 수밖에. 한국도 그런 사회가 되..

미국 생활 2023.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