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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에는 맘이 없고

“에프라임 사람들은 용사같이 되고 그들의 마음은 포도주를 마신 것처럼 기뻐하리라. 그들의 자녀들은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그들의 마음은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 (즈카 10, 7) 오늘 아침에 읽은 성경 구절이다. 이걸 읽으며 제대로 된 묵상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들의 마음은 포도주를 마신 것처럼 기뻐하리라.”에 눈이 끌려 군침부터 돌았으니 그야말로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고나 할까. 오늘 아침에는 커피 대신 포도주나 한 병 깔까? 아니, 그건 좀 과한 것 같으니 커피에 위스키나 몇 방울 넣어 마실까? 그러면 마음이 기뻐질까? 나이 들며 술 마시는 양과 횟수가 무척 줄었지만, 성경에서 이런 구절이 눈에 띄면 반갑다. 오늘 저녁도 술 마시지 않고 그냥 넘기기는 힘들 듯하다. 하느님이 ..

신앙 생활 2022.10.20

영화 ‘Tokyo Story’를 다시 보고

1953년도 작품으로서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일본 영화 ‘Tokyo Story’는 20세기 가족 관계를 섬세하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일본 서부 지방인 오노미치시에 살던 은퇴한 노부부가 도쿄에 사는 자식들(2남 2녀) 가족과 홀로 된 며느리(2차 세계대전 중 행방불명된 둘째 아들의 처)를 방문한다. 자식들은 부모님을 반갑게 맞이하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그들을 부담스러워하며 소홀히 대한다. 홀로된 둘째 며느리만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시부모를 모시고 도쿄 관광에 나서며 극진히 모신다. 변해 버린 자식들의 태도에 마음이 상해서 노부부는 예정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가려고 기차를 탔는데 아내가 갑자기 위독해지더니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세상을 떠난다. 연락을 받고 온 자식들은 장례식을 마치자 바로 ..

이것저것 2022.10.04

나의 이웃 스캇(Scott)

아침에 일어나 블라인드를 열고 창밖을 내다보니 건너편 집에 사는 스캇(Scott, 74세)과 리타(Rita, 84세) 남매가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일상적인 광경일 수는 있지만, 한 달쯤 전에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던 스캇을 보니 반가웠다. 산책길에 어쩌다 만나 누님의 안부를 물으면 20% 정도는 건강에 문제가 있지만, 80% 정도는 괜찮으니 그만하면 걱정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씩 웃고는 했다. 그는 만날 때마다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런 그에게 이제 담배를 끊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충고하면 들은 체하지 않더니 몇 달 전 어느 날 드디어 담배를 끊은 지 100일째 되는 날이라며 자랑하기에 부디 마음 바꾸지 말라고 잔소리했었다. 그 이후로는 그를 통 볼 수가 ..

미국 생활 2022.09.24

에제키엘서를 읽다가

예언서인 에제키엘서 1장에 나오는 ‘주님의 발현’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때 내가 바라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면서, 광채로 둘러싸인 큰 구름과 번쩍거리는 불이 밀려드는데, 그 광채 한가운데에는 불 속에서 빛나는 금붙이 같은 것이 보였다.” (에제 1, 4) 이어서 계속되는 구절에서 하느님이 에제키엘에게 임무를 내리시는 장면에서 하느님의 권능이 빛을 내뿜는 바퀴 형상으로 나타났다고 묘사된 부분을 읽을 때마다 미확인 비행물체(UFO)를 타고 온 우주인의 출현일 거라고 상상해 본다. “그 바퀴들의 모습과 생김새는 빛나는 녹주석 같은데, 넷의 형상이 모두 같았으며, 그 모습과 생김새는 바퀴 안에 또 바퀴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것들이 나아갈 때는, 몸을 돌리지 않고 사방 어디로든 갔다. 바퀴 테두리는 ..

신앙 생활 2022.09.16

이건 횡재인가 골칫거리인가

일주일쯤 전에 아마존에서 작은 소포를 하나 받았다. 요즈음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아마존을 자주 이용하는지라 또 주문한 물건이 왔거니 하고 별 생각 없이 포장을 뜯었더니 뜻밖의 물건이 들어 있었다. 전화기 스크린과 작은 연장 몇 개였다. 우리가 쓰는 전화기와는 크기와 모양이 다르고 주문하지도 않은 물건이기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배송 라벨(Shipping Label)을 확인했더니 주소는 맞는데, 이름이 캐런(Karen) 이라고 찍혀 있었다. 우리 집 주위에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으니 이건 아마존에서 잘못 보낸 물건이 틀림없었다. 이 물건을 반송하려고 아마존 웹사이트에 들어가 소비자서비스 코너에 들어가 보았더니 불만 사항을 항목별로 세분해서 다시 담당자와 채팅하게 되어 있었다. 이런 일은 드문지 어..

미국 생활 2022.09.08

홀인원은 아무나 하나

우리 성당 신자인 S 형님은 80대 초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일주일에 한두 차례 정도는 골프를 즐기신다. 며칠 전 저녁 그분에게서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가 잔뜩 들떠 있었다. 그날 오후 4시 반, 같은 성당에 나가는 교우들과 함께 함께 동네(Neptune, New Jersey) 골프장(Shark River GC)에서 골프를 즐기다가 14번 홀(175 야드)에서 홀인원을 했다는 전화였다. 몸과 마음이 아직 젊어서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서 당구와 골프를 즐기며 나이보다 훨씬 젊게 사시더니 드디어 일을 냈구나 싶었다. 그래도 파3치고는 긴 거리에서 홀인원을 한 건 대단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번의 샷으로 골프공을 홀컵에 집어넣는 것을 홀인원이라고 한다. 홀인원을 할 확률..

미국 생활 2022.09.08

호기심과 사생활 존중

집 둘레를 도는 산책길에서 거의 언제나 스콧(Scott)이라는 백인 남자를 만난다. 다리 하나를 잃어서 의족을 낀 나는 목발 두 개를 짚고 열심히 걷는데, 두 다리 멀쩡한 그는 늘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전화기를 들여다본다. 이른 아침에는 어쩌다 벤치에 커피잔이 보이기도 한다. 만날 때마다 “안녕하세요”가 아니면 날씨 얘기를 나누지만, 가끔 땡볕을 쬐며 걷는 나에게 “더운 날씨에 걷고 나서 꼭 물 한 잔 마셔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고맙소”라고 대답하지만 때로는 “물 말고 맥주를 마실까 합니다.”라고 하면 그는 정색하며 “You, bad boy”라고 말한다. 참 웃음이 박한 영감이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일 년이 좀 더 된 것 같다. 어느 날 낯선 백인 남자가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

미국 생활 2022.09.08

소설 ‘오두막’의 여섯 가지 주요 문제점

거의 2,000만 부나 판매된 장기 베스트셀러인 ‘윌리엄 폴 영’의 소설 ‘오두막’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맥켄지 알렌 필립스의 가족 휴가 중에 막내딸인 미시가 유괴된다. 경찰은 오리건주의 숲속에 버려진 한 오두막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증거로 피 묻은 옷을 발견하나 시신은 찾지 못한다. 그로부터 4년 후, 깊은 슬픔 속에서 살아가던 맥켄지는 분명히 하느님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편지를 받는다. 그 편지로 하느님은 그의 딸이 살해된 오두막으로 그를 초대한다. 어느 겨울날 오후에 그는 오두막에 도착한다. 거기서 그는 인간의 형태로 나타난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을 만나서 주말을 함께 보내며 길고도 심오한 대화, 때로는 격렬한 토론을 나눈다. 거기에서 보낸 체험으로 인해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한다. ..

번역문 2022.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