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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설립 40주년 기념집

벼락치기로 성당 설립 40주년 기념집을 만들었다.단기간에, 비용을 적게 들여서, 소책자 형식의 기념집을 만들고자 했는데 이것저것 조건이 딱 맞아떨어져서 당초 목적한 대로 만들 수 있었다.수십 년 간의 역사 자료 중 빠진 것도 적지 않았지만, 정리해서 연혁을 만들어 보았다. 적지 않은 내 나이에 그런 작업이 감당하기 쉽지는 않았지만, 아쉬운 대로 완성할 수 있었다.신자가 그리 많지 않아서 원고가 제대로 들어올지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예상보다는 많이 들어와서 다행으로 여긴다.오랫동안 거래하던 미국 출판사를 통해 제작 비용도 무척 싸게 들었으니 어려운 성당 재정에 그것도 참 다행스럽다.시간 절약을 위해 실무적인 작업을 혼자서 다 했더니, 부족한 점이 적지 않을까 봐 걱정스럽기는 하나 그만하면 잘 된 것 같다..

신앙 공동체 2024.06.13

작은딸의 출장

작은딸에게서 일주일 예정으로 프랑스 출장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연락을 받고 나서 내가 지금의 딸들보다 더 젊었을 적에 출장 다닌 일이 생각났다.늘 큰 고객에게 호출받아서 부품 공급에 문제가 많다거나, 품질 관리에 더 유의해야 한다는 등의 잔소리나 야단을 맞는 게 출장 가는 까닭이었으니 떠나기 전에도 마음이 무거웠고, 돌아오면서도 유쾌하지 않았다. 서비스 부서의 책임자는 늘 을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다.담당지역이 미국이었으니 주로 미국 내의 큰 거래처를 방문했지만, 가끔은 한국 내 생산 부서로 출장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내가 갑의 입장이 되기는 했지만, 같은 회사 직원끼리 눈살 찌푸려 봐야 업무의 사안에 따라 갑을 관계는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 서로 심한 말은 자제하는 게 불문율이었다.작은딸의 이번 ..

가족 이야기 2024.06.11

바람피운 남편이 아직도 용서가 안 되어서

아침 산책길에 85세인 중국 태생 할머니 헬렌을 만났다. 외출복을 입고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어쩐지 쑥스러워하더니 외출하는 까닭을 설명했다.“오늘이 딸들 아버지 49재 날이라서 무덤에 가려고 하던 참이야. 당신, 49재가 뭔지 알지?”“알다마다요. 전 남편이 오늘까지는 지상에 머무르다가 내일이면 천국으로 떠나겠네요?”“전 남편이라기보다는 애들 아빠지. 밤새 무덤에 가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느라 잠 한숨도 못 잤어. 그런데 떨어져 사는 딸들이 꼭 가봐야 한다고 강요하니 어쩔 수 없이 무덤에 꽃이라도 두고 오려고 해.”그녀는 기독교 신자라서 49재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도 하지만, 20여 년 전에 바람피우다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 살다가, 그 여자가 몇 년 전에 세상을 떠..

미국 생활 2024.06.09

차 좀 잘 만들지

2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차를 폐차하고 나서 새 차를 알아보며 한국산 차도 알아보려다가 바로 그 생각을 지운 건 그 얼마 전에 본 유튜브 영상 때문이었다. H 자동차의 검사원이 발로 차 문을 닫는 장면과 유튜브를 시청하며 건성으로 작업하는 듯한 작업자의 모습이 그 회사 자동차에 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깊이 심어준 것이었다. 보증기간이 제아무리 길다고 해도 소비자들은 고장이 안 날 차에 끌린다. 자동차를 소홀히 다루는 회사의 차에 호감이 가지 않는 건 당연하다. 미국인 직원들과 오랫동안 같이 일해 보니 그들은 근무 시간에 개인적인 볼일을 보거나 업무와 상관없는 잡담을 나누며 딴짓하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근무 중에 유튜브 시청이라? 상상이 되지도 않지만, 미국 직장에서는 그런 직원은 즉시 해고당할 것이..

이것저것 2024.06.07

미국 은행원

며칠 전 온라인으로 은행 잔고를 확인하는 데 오래전에 발행한 수표가 입금된 게 보였다. 번호도 오래전 것이고, 수취인 성명도 없고, 수표 영상도 볼 수 없었다. 금액이 많지는 않았지만, 혹시 사기꾼의 짓이 아닌지 부쩍 의심이 들었다. 몇 년 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기꾼이 큰 금액의 돈을 빼 가서 해결하느라 고생깨나 했다는 지인의 얘기가 생각나며 불안해졌다. 은행에 연락하여 확인해 보니 거의 4년 전에 친척에게 축하 선물로 준 수표였다. 선물로 받은 수표를 인제야 입금한 그 친척도 어지간하지만, 180일 넘은 수표는 무효로 간주해야 하는데 4년이나 된 수표를 입금 처리한 은행도 멍청하다.오래전 직장에 다닐 때 부하 직원이 내 사인을 받기 위해 책상에 둔 400여 장의 수표를 바빠서 미처 사인하지 않은..

미국 생활 2024.06.01

이웃 할머니 돕기

아내가 산책에서 돌아와서, 오는 길에 이웃에 혼자 사는 중국인 할머니(85세)를 만났더니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서 답답해하더라고 했다. 종일 유튜브 시청하는 걸로 소일거리 삼는 분인데 내가 도와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체육관에서 다녀와서 그 할머니 댁을 찾아보니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까마득하게 높고 경사가 급해서 나같이 의족 끼고 지내는 사람이 오르려니 정신이 아득했다.계단을 올라 식탁에 앉으니,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내놓으며 모두 유튜브가 안 된다고 했다. 침실에 있는 노트북도 안되고. 아니 고령의 할머니가 왜 이리 전자 기기기 이리 많담. 몇 가지 물어보았더니 아예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유튜브 시청 말고는 이메일조차 사용할 줄 모른다니 그럴 수밖에.그래도 몽땅 유튜브가 안 나온다니 이건 분명히 인..

미국 생활 2024.05.31

가는 세월

오늘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있는데 내 옆자리에 몇 달 전에 통성명한 스티브(내 영어 이름과 같다)라는 영감이 앉기에 “오랜만이요”라고 인사했더니, 그가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라고 물었다. “스티브요.” 그랬더니 그가 “내 이름은…”이라기에 내가 얼른 가로채 말했다. “스티브 아니오? 나와 이름이 같다고 하지 않았소?” 그랬더니 그가 조금 낭패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우리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소?”라기에 그랬다고 했더니, “이런, 내가 이렇게 헤매는 걸 마누라가 몰라야 할 텐데. 이젠 기억력이 떨어져서…”   사실을 말하면 통성명한 후에도 여러 차례 가벼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는 기억을 잘 못 하는 것 같았다. 나도 건망증이 심해지는 것 같아서 은근히 걱정하고 있는데, 나보다 나이가 적어 보이..

이것저것 2024.05.16

희망고문

2005년 말 교통사고로 6개월간 입원했던 병원에서 퇴원하기 며칠 전 신경외과 의사가 절단되지는 않았지만, 망가져 신경이 온통 손상되어 발을 올릴 수도 없는 오른쪽 다리를 꼼꼼히 검사하고 나서 말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나쁜 소식은, 손상된 신경이 많이 손상되어 거의 평생 브레이스(발받침기)를 착용해야 합니다. 좋은 소식은 손상된 신경이 천천히 자라고 있습니다. 정상으로 회복되는 데는 30년 정도 걸릴 겁니다.” 그때 내 나이가 57세였다. 아흔이 다 되어 신경이 복구된들 그 나이에 운전을 할 건가?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다고. 그리고 19년이 흘렀지만, 회복될 거라는 신경은 감감무소식이다. 여전히 오른쪽 다리는 감각이 없고, 브레이스를 착용하지 않으면 걷기도 힘든다. 운전은 언감생심이..

교통사고 이후 2024.05.14

나이 들어서 혼자 살기

늘 코에 휴대용 산소 공급기의 파이프를 꽂고 다니는 이웃집 조앤(Joanne) 할머니의 둘째 아들 조(Joseph)가 앞뜰에 꽃을 심다가 나를 보자 반갑게 인사했다. 어머니날이라고 방문하며 사 들고 온 꽃을 뜰에 심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암으로 몇 년째 투병 중인데, 2년 전에 바닷가에서 낚시하다가 우연히 나를 알아보고는 인사를 나눌 때보다는 안색이 아주 좋아 보이길래 병세가 진전이 있었는지 물어보자, 손을 파도치듯이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오르락내리락, 호전되었다가, 악화하였다가…사는 게 다 그런 거지요 뭐.”라며 달관한 듯이 씨익 웃었다.  재작년 독립기념일에 바닷가에 가서 생선 튀김을 사 먹고 낚시터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웬 삐쩍 마른 사내가 나를 보더니 스티브 아니냐고 묻기에 “동네 안팎을 가..

미국 생활 2024.05.13

삼인성호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반이었던 J와 단톡방에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충북 음성 촌놈인 그는 어렸을 때 키가 껑충하게 크고, 늘 얼굴을 찌푸리던 모습으로 기억된다. 경찰서장 출신에, 박사학위 소지자, 그리고 대학교 교수까지. 이 정도면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힐 만하다. 그런 그가 평범하게 살아온, 강원도 삼척 촌놈인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몇 번인가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그가 “자네가 기억나지 않아 친구에게 물어보니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목사라던데 사실인가?”라기에 “목사 친구를 몇 명 둔 건 사실이지만, 나는 가톨릭 신자다.”라는 말로 답했지만, 어쩌다 나를 유명한 목사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다 있을까? 그래도 누군가가 나를 다른 직업도 아닌 목사로 잘못 알고 있다..

이것저것 2024.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