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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족만 끼면 불편 없이 살 수 있다던데요

‘600만 불의 사나이’란 유명한 미국 드라마가 있다. 우주 조종사로 일하다 사고로 팔, 다리 그리고 눈을 잃은 주인공이 생체공학 수술을 받고 초인적인 능력을 갖춘 인간이 된다는 내용인데, 주인공의 수술비용으로 600만 달러가 들었다고 ‘600만 불의 사나이’란 제목이 붙여졌다고 한다. 드라마가 제작된 게 70년대 후반이니 그동안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할 때 지금 화폐 가치로는 2,400만 불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 돈을 들인다고 해도 현재의 과학 및 의료 수준으로는 아직 그런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수술 및 치료에 든 비용을 그간의 물가 상승률을 따져 지금 화폐 가치로 계산하면 거의 300만 불이 되니 나도 적지 않은 의료비를 썼지만, 초인적인 능력은커녕 다리 하나..

교통사고 이후 2024.09.30

골프여 안녕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 하나를 절단한 후 오랫동안 병원과 재활원 신세를 졌다. 퇴원 후에는 매주 여러 번 재활원에 통원하며 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본격적인 생활 적응 훈련과 체력 강화 훈련을 받았는데, 휠체어 굴리기로 시작된 훈련이 절단된 다리에 의족을 끼고 쌍지팡이를 짚고 걷는 연습으로 마무리되었다. 적응 훈련에는 평지 걷기, 계단 오르내리기, 다른 사람 어깨 짚고 걷기, 실물 모형이 비치된 장소에서 은행 이용하기, 시장 보기, 그리고 부엌에서 일하는 연습 등 실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반복 연습이 포함되었다. 재활 훈련을 모두 끝내고 집에서 독서로 소일하던 어느 날 ‘다리 절단 장애인 골프회’라는 곳에서 초대장을 받았다. 다리를 절단한 사람에게 골프 지도를 해 주고 회원들끼리 골프도 함께 즐기는 모임이..

교통사고 이후 2024.09.30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미국에 주재원으로 파견된 지 겨우 한 달 지난 어느 날, 그러니까 30여 년 전 1월 어느 매우 추운 날에 출장을 떠났다. 새벽에 뉴저지를 떠나 미시간 주, 트로이에 있는 K-Mart 본부를 방문하고 당일 오후에 오클라호마 주의 오클라호마 시티에 있는 TG&Y 본부를 방문하는 강행군이었다. 특별한 용무 없이 부임 인사를 위해 대형 거래처를 방문하는, 마음 가볍게 떠난 출장이었지만 신통치 않은 영어 때문에 적지 않게 신경이 쓰였고, 미국 사정에 익숙하지 않아 새벽에 택시 부르는 것부터 호텔에서 묵는 것까지 쉬운 일이 없었다. 아침에 미국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이 모여 있다는 디트로이트의 공항에 내려 키가 후리후리하고 아름다운 백인 여자들이 두꺼운 고급 모피 코트를 입고 로비를 바쁘게 오가는 걸 보고 북쪽 지..

교통사고 이후 2024.09.30

나는 왕자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거의 90년 전에 홍사용 시인이 발표한 시의 제목이다. 내가 요즈음 아내에게 가끔 하는 싱거운 말인 ‘나는 왕자로소이다.’는 홍사용 시인의 시와 아주 다른 내용이다.  오늘 아침에도 아파트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먼저 내려서 몇 걸음 걸어가던 남자가 얼른 되돌아와서 엘리베이터 문을 잡고 내가 탈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아내가 있었더라면, “내 신분이 드러난 것 아니야? 아무래도 저 사람, 내가 왕자인 걸 아는 눈치던데.”라고 한마디 했을 것이다. 별로 잘 난 데가 없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던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를 잃고 쌍크러치를 짚고부터는 어딜 가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어디서든 건물이나 방에 드나들 때는 어디에서인가 나타나 문을 열고 손잡이를 잡고..

교통사고 이후 2024.09.26

아픈 사람이 왜 그리 많을까?

저녁 식사 후 운동하러 아파트 로비 옆에 있는 체육관으로 가는데 우편물 보관실 카운터에 놓인 카드 석 장이 눈에 띄었다. 누가 세상을 떠나거나 입원하면 아파트 주민 누구라도 가족이나 본인에게 위로나 격려의 말을 적어서 전하도록 카운터 위에 카드를 놓아 두는데, 입주자 대부분이 나이 드신 분들이라 70여 세대밖에 살지 않는 우리 건물이지만, 그런 카드가 자주 놓인다. 대개는 한 장씩 놓이는데 이번에는 한꺼번에 석 장이나 보여서 궁금한 마음에 카드를 하나하나 열어보았다.     왼쪽 카드는 “케빈, 퇴원을 축하합니다. 이제는 푹 쉬며 인생을 즐기세요.” 이런 문구가 씌어 있었는데, 케빈 할아버지가 누구더라? 혹시 늘 휴대용 산소 호흡기를 끼고 지내는 1층에 사는 할아버지가 아닐까? 아무튼, 위급한 상황을 넘..

교통사고 이후 2024.09.26

나비의 꿈, 장주의 꿈, 나의 꿈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에서 내 왼쪽 다리를 절단하며 뼈를 둥그렇게 다듬었는데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했던지 일부가 볼록하게 튀어나와서 의족을 착용하면 그 부분의 피부가 잘 상한다. 절단으로 뼈가 드러난 부분에는 허벅지 살을 떼어서 이식하였는데 별로 아름답지도 않고 색깔도 거무죽죽한데 아무래도 이식한 피부가 약해서 의족을 오래 끼고 있으면 아프기도 하지만 짓무르거나 상하는 일이 잦다.  아주 드물게는 절단 부분이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찌릿거려서 매우 고통스럽다. 일단 찌릿거리기 시작하면 비명이 저절로 나올 정도인데다가 제법 오래 가므로 밤에 그런 일이 생기면 잠자는 건 아예 포기해야 한다. 그럴 때는 통증이 어서 지나가도록 기도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별다른 대책이 없다.     오늘도 외출에서 돌아와 낮잠을..

교통사고 이후 2024.09.26

나 홀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은 산을 나 홀로 오르고 있었다. 새나 벌레 그리고 짐승도 보이지 않고 나무도 없이 억새나 갈대처럼 생긴 풀로만 온통 뒤덮인 산의 풍경은 삭막했다. 구름이 잔뜩 끼어 하늘은 흐리고, 강한 바람이 불다가 그치고, 그쳤다가 불기를 반복하는데 그때마다 키 큰 풀들이 이리저리 어지러이 흔들렸다. 좀 떨어진 산꼭대기에 다 쓰러져가는 외딴 오두막집이 보였다. 최근에 이사 온 가족 세 명이 그 집에 살고 있다고 누군가가 소곤거리는데 말하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몸이 오싹하도록 찬 바람을 맞으며 산길을 혼자 허위허위 걸으려니 스산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어서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 두 달 동안 깊은 잠에 빠졌었다. 남들은 ..

교통사고 이후 2024.09.26

제발 잠 좀 잡시다

뉴욕 타임즈에 게재된 어느 간호사의 글에서 “간호학교에 입학하고, 첫 강의에서 어느 교수가 환자 치료의 역설적인 진실 중 하나로서 ‘환자는 병원에 잠자러 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라는 대목을 보고 내가 교통사고 후 병원에 몇 달 입원해 있는 동안 내내 수면 부족으로 고통받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또 “정신 건강을 위해서, 상처의 치유를 위해서 그리고 강력한 면역 체계의 유지를 위해서 환자는 잘 자야 하지만,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밤마다 도막 잠에 시달리며 제대로 잘 수 없는 게 현실이다.”라고 썼다. 더 읽어 보니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데도 우선순위가 있는데 시간 맞춰서 하는 검사와 투약이 환자의 수면보다 순위가 앞선다는 얘기였다.  병원에 입원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온종일 밤낮으로 병상에 누워있..

교통사고 이후 2024.09.26

1번 쉬, 2번 응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과 재활원에 몇 달 동안 입원하였을 때 다리 하나를 잃은 나에게 재활원에서는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기만 해서 축 늘어진 근육을 강화하는 근력 운동과 평행봉을 짚고 일어서는 훈련을 주로 시켰다.     몸이 차차 회복되면서 늘 차고 있던 성인용 기저귀 사용 횟수를 줄이기 위해 대소변 용기를 사용해서 배변을 처리하는 훈련을 받았다.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침대에서 휠체어로 내려오고, 누군가가 휠체어를 밀어주어야 재활원 내에서 이동하는 게 고작이었으므로 화장실 이용은 꿈도 못 꾸었고 산소 호흡기 사용을 위해 기도에 뚫은 구멍 때문에 말을 전혀 할 수 없을 때였다.      어느 날 씩씩하게 생긴 간호사가 큰 볼일과 작은 볼일을 보고 실을 때 의사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교통사고 이후 2024.09.26

내가 사흘 동안 걸을 수 있다면

대학교 1학년 때 영어 교과서에 실렸던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 이라는 수필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느꼈었다. 앨라배마 주에 살 때, 집에서 자동차로 가면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던 헬렌 켈러의 생가를 가족과 함께 찾아본 건 예전에 읽은 그녀의 수필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비록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였지만 그녀는 만약 자신이 단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보고 느낄 것인지를 'Three days to see'란 제목으로 수필을 써서 발표했다. 헬렌 켈러의 글은 당시 경제 대공황의 후유증에 허덕이던 미국인들을 잔잔히 위로했다고 한다. 우리가 무심코 마주하는 이 세계가 날마다 기적 같은 것임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체적 ..

교통사고 이후 2024.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