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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숭늉 찾기

우물에서 숭늉을 찾았다는 전설 속 인물이 나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맥주를 원샷으로 마시기 시작한 시조가 내가 아닐까 싶다. 물론 공식적인 기록은 없지만.직장에 다닐 때 계산기를 찾다가 눈에 띄지 않자, 얼결에 탁상전화기의 자판을 두드린 게 다른 직원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상사의 지시는 물론 벼락같이 해치웠지만, 칭찬은 별로 듣지 못 했다. 오히려 경솔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나 모르겠다. 나는 일을 잘 했지만(그냥 웃으세요) 상관이란 워낙 칭찬에 인색한 인종이니까.부하 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한 다음 바로 다 끝냈느냐고 묻는 일이 자주 있어서 사람을 들볶는다고 원성을 듣기도 했다. 부하라는 인간들은 왜 하나 같이 느려터졌고, 무능하냐고 푸념했다.이게 모두 내 지랄같이 급한 성질 탓이다.사흘..

이것저것 2024.05.07

쟈니와 빌

오전이고 오후고 언제나 집 둘레길에서 눈에 띄는 호리호리한 동양인이 있다.깔끔한 외모에 무표정한 얼굴, 남들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옷차림이라서 쉽게 말을 걸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던 그를 본 지 거의 5년이 다 되어 가는데 어저께 처음으로 서로 통성명을 했다. 어쩌다 딱 맞닥뜨리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나, 쟈니라고 합니다. 중국 태생의 은퇴 목사로서, 나이는 69세입니다. 아내의 이름은 그레이스라고 합니다. 당신 아내의 이름은 데레사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억양 없이 숨 가쁘게 말을 쏟아내는 그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이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 몇 년 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니. “서부 영화 Johnny Guitar에 나오는 주인공 쟈..

미국 생활 2024.05.05

젊은이들의 도전 정신

며칠 전에 만난 주치의의 지시에 따라 밤중에 자주 쥐가 나는 다리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다. 물리치료사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다가 한마디 던졌다. “I used to be a good boy. Now I am a good old man.” 집에 돌아와서 생각하니, 모범생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갖고 지낸 지나간 시절이 후회스러웠다. 고분고분 어른 말을 잘 듣는 게 모범생이라고 생각해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눈치를 보며 당당하게 내 의견을 표현하지 못 하고 다소곳이 듣기만 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모범생이라는 단어는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하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지만, 융통성이 없고, 잘난 체하고, 깐깐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기도 한다. 부정적인 의미로 모범생을 지칭할 때..

이것저것 2024.04.29

미국의 동네 의사

의사 중에서도 제일 자주 만나는 의사는 아무래도 동네 내과의사다.수많은 의사를 만나보니 세상에 요즘같이 첨단 장비로 증세를 잡아내는 시대에 특별히 용한 의사란 없고 진료 경험이 많아서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환자가 불안하지 않게 잘 설명해 주는 의사가 유능한 의사로 생각된다. 의사가 비교적 많고, 노인과 빈곤층에 대한 의료 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미국에서는 병원 문턱이 그리 높지 않고, 의사들도 매우 친절하다. 중환자 말고는 용한 의사를 만나러 대학병원을 찾아 장시간 대기하는 미련한 환자는 별로 없고 대개는 편한 마음으로 동네 의사를 만난다. 의사가 불친절하거나, 성의가 없는데도 그 의사를 계속 만날 필요는 없으니, 개업의들도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내과 의사들의 진료 시간은 대개 한 시간..

미국 생활 2024.04.26

잭과 록산느 부부

옆집 잭과 록산느 부부는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콘도미니엄으로 이사 왔으니 서로 알게 된 지 6년 차가 되었다. 우리 부부와 비슷한 나이라서 친근감이 느껴져 만나면 가벼운 인사도 나누고 소피라는 이름의 늙은 개에게도 관심을 표하고 했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소피는 늙고 병들어서 세상을 떠나 매기라는 이름의 어린 개를 새로 입양했다. 잭도 건강이 서서히 나빠지더니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 투석을 받으러 병원으로 행차한다. 아직은 힘겹게 운전하기는 하지만, 휠체어와 워커를 번갈아 사용하며 걷는 모습이 보기에 안쓰럽다. 아침마다 대개는 록산느가 목줄을 잡고 어린 개를 산책시키는데, 언젠가부터는 록산느도 지팡이나 워커를 짚고 힘겹게 걷기에 물어보니 양쪽 무릎이 아파서 걷는 게 힘들다고 한다. 부부가 모두 건..

미국 생활 2024.04.21

4월이 오면

4월을 뜻하는 영어 단어 April의 어원은 ‘열린다(open)’는 라틴어 동사 aperire로서,나무나 꽃이 열려서 움트고 피는 계절을 암시한다고 한다. 현대 그리스어에서 봄이라는 단어가 열림이라는 뜻을 가진 Anoixis인 것과 비슷한데 라틴어든 영어든 열린다는 단어와 봄이라는 계절이 주는 느낌은 참 비슷하다. 달력으로는 한겨울인 1월에 한 해가 시작되지만, 계절로 볼 때는 4월이 한 해를 열어 주는 것 같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April come she will”의 가사는월별 날씨가 뉴저지 날씨와 조금 다르긴 하지만,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노래하는 것 같다. 4월이오면 그녀도 오겠지. 봄비로개울물이 넘치면. 5월이오면 내 곁에 머물러 다시 내품 안에서 쉴 테지. 6월이오면 태도를 바꾸어 불안..

미국 생활 2024.04.16

“매기의 추억”("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에 얽힌 사연

‘매기의 추억’이라는 노래의 작사자인 조지 워싱턴 존슨과 주인공 매기 클라크는 고등학교 교사와 제자로 만난 지 몇 년 후 결혼했지만, 불행하게도 노래의 가사와는 달리 그들은 함께 나이 들어가지는 못하였다. 매기의 폐결핵이 더는 치료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1865년 월에 결혼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스물세 살에 세상을 떠났다. 다음 해에, 조지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살던 옛 친구, J. C. 버터필드를 찾아가서 그의 작품, “매기의 추억”을 음악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조지는 1917년에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서 겨울을 지내는 동안에 세상을 떠났는데, 매기가 죽은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난 때였다. 매기가 당시에는 불치병인 폐결핵에 걸린 줄 알면서도 매기와 결혼한 후, 가망 없는 투병을 하며..

이것저것 2024.04.13

그 영감 바람나는 건 아니야

사람들이 자주 차를 새 걸로 바꾸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고 한다. 1. 최신 기술이 적용된 새 차에 대한 호기심 2. 부를 과시하기 위해 고급 차로 업그레이드. 3, 유지 관리 비용 절감 4, 리스 기간 만료 5. 다양한 차에 대한 욕구 6. 감가상각을 고려한 손실 최소화 7. 생활 패턴 변화에 따른 차종 변경 8. 인센티브 제공에 따른 구매 욕구 발생 뭐든 바뀌는 게 싫은, 나이 든 사람들은 타던 차를 처분하고 새 차로 바꾸는 건 일종의 도전일 수 있다. 신기술이 적용되어 기능이 복잡해진 새 차에 적응하는 것이 머리 아프고, 차를 사는 과정, 특히 자동차 딜러와의 눈치작전이 피곤하니 대개는 “에이, 쓰던 게 편하지”라고 생각하여 자동차 수명이 거의 다할 때까지 문제가 있으면 수리해 가며 굴리는..

미국 생활 2024.04.11

생로병사(生老病死)란 과정

생로병사(生老病死)란 과정은 잘났던 못났던, 돈이 많든, 돈이 없든 간에, 권력이 있든 없든 간에 누구에게나 확정된 과정이다. 부처님은 이것을 ‘무상(無常)’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어 부처님은 ‘무상성’에서 벗어나는 길로 ‘사성제’와 ‘팔정도’를 제시했다. 그렇다고 죽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마음으로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자도 아닌 내가 이런 오묘한 이치를 깨닫기는 어려우나 수긍할 수 있는 말씀이다. 또한 성경에는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로마 8, 6)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육신과 영(성령) 사이의 대립을 강조하고 있으며,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성령의 인도 아래서 영적인 생명과 평화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나..

신앙 생활 2024.04.08

새 스마트폰을 사고 나서

오랜만에 큰 마음 먹고 우리 부부의 스마트폰을 모두 새 걸로 바꿨다. 내 것은 갤럭시 S7이니 징하게도 오래 쓴 셈이다. 더 쓸 수도 있었는데 배터리의 충전 기능이 떨어져서 어쩔수없이 바꿨다. 전화기와 카톡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버라이존 가게 사장에게 적어주었더니 데이터를 새 전화기로 옮기는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각종 앱과 카톡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걸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이후에 자잘하게 다시 설정해 주어야 하는 게 수없이 많았다. 글자 크기 키우기, GPS 소리 설정, 카톡 알림 소리 나오게 하기, 게다가 Uber Account 설정….등등 아이고 머리 아파서 나이 들어서는 전화기도 못 바꾸겠네. 멀쩡한 전화기를 다시 들고 와서 불량품이라고 화를 내는 손님이 적지 않을 테니 가게 주인도..

이것저것 2024.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