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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10여 년 전에 영세하고 바로 냉담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거의 하지 않은 분이 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서 우리 옆 동네에 산다는 그분의 연락처를 알아낸 다음에 병원을 방문하였다.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환자의 모습은 피골이 상접하여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 말하는 것조차 힘에 겨워하는 그분의 목소리는 가냘파서 알아듣기가 매우 어려웠다. 병상 옆에는 손도 대지 않은 아침 식사가 그대로 있었고, 우리가 있는 동안에 간호사가 점심을 가져다주었지만, 음식만 보면 토할 것 같다기에 식사를 권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가족이 옆에서 어르고 달래가며 조금씩 자주 음식을 먹도록 해야 할 텐데. 가족은 생업에 바빠서 옆에서 병간호할 수 없다니 안타까웠다. 통증이 심해서 잠을 이루기가 어렵다고 하고 식사를..

교통사고 이후 2024.09.26

죄수 아닌 죄수, 중환자

‘환자’라는 영어 단어인 Patient에는 형용사로 ‘참을성이 있는’ 또는 ‘끈기 있는’이라는 의미도 있다. 환자는 병들었거나 다쳐서 의료적으로 돌보아 주어야 하는 사람을 가리키고 Patient의 본래 의미는 ‘고통받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이들 모두를 환자라 부를 수 있으니, 환자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어진다. 죄를 짓거나 전쟁 중에 적군에게 잡혀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유를 빼앗기고 정해진 공간에 억류된 사람을 죄수 또는 포로라고 부르는데 입원한 중환자는 스스로 원하지 않았는데도 병상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갇혀서 육신의 자유를 잃고 지내니 죄수나 다름이 없다. 건강을 잃고 제대로 움직일 수 없거나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환자는 오히려 죄수보다 더 큰 고..

교통사고 이후 2024.09.26

장애는 극복이 안 되는 거다

내가 휠체어 굴리는 연습을 시작한 건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고 3개월 지나 재활원에서였다. 바닥이 미끄러운 재활원 복도에서 처음 휠체어 굴리는 연습을 할 때는 기운이 없었지만, 슬슬 잘 굴릴 수 있었다. 퇴원 후에 카펫이 깔린 아파트 복도에서 휠체어를 굴려보니 조금 힘들었다. 경사진 실내 바닥은 매우 힘들고 바닥이 균일하지 않은 실외에서 휠체어 굴리는 건 더욱 힘들다. 그럴 때는 누군가가 뒤에서 밀어주 어야 한다. 내가 다리 하나를 잃기 전에는 휠체어는 바퀴를 슬슬 돌리면 그리 힘들이지 않아도 미끄럽게 굴러가는 줄 알았다.  대학병원에서 재활원으로 옮긴 다음 날 아침에 입원실 앞에 준비해 둔 휠체어를 보는 순간 안도감이 들었다. “아, 그렇지. 휠체어로 생활하면 되겠구나.” 대학병원에서 지낼 때는 다..

교통사고 이후 2024.09.26

이 좋은 아침에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는 휴전되고 2년 후인 1955년이니 전쟁의 참화가 채 사라지지도 않았을 때였으므로 주위에는 전쟁 중에 가족을 잃은 가정이 수두룩했고 집에서 멀리 보이는 산 위의 공동묘지에는 몇 년 사이에 새로 생긴 무덤이 숱하게 있었다. 묘지 위로 도깨비불이 떠도는 날 밤이면 아이들은 무서움에 떨었다. 주검을 자주 보아서인지 어른들이 해주는 옛날 얘기에는 도깨비나 귀신이 많이 등장했고 귀신을 직접 보았다고 그럴싸하게 허풍을 떠는 아이들도 많았다.  친구들이 듣고 보았다는 귀신 얘기는 대개 이런 것들이다. 어떤 여학생이 학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변기 아래에서 손이 불쑥 올라오더니,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하고 묻는 말에 기절했다더라. 밤늦게 어두운 골목에서 하얀 옷을 입..

교통사고 이후 2024.09.26

소녀야 일어나라

참 오래전 일이었다. 뉴욕 한국 라디오 방송을 듣다 보면 가끔 어느 할머니께서 전화로 가수 허영란이 부른 날개라는 노래를 신청하였다. 할머니는 그 노래를 신청할 때마다 식물인간 상태로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는 아들이 이 노래 가사처럼 벌떡 일어나 뛰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 참 가슴이 아팠는데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를 잃고 재활원에 드나들며 걸음마를 다시 배우고 이 노래를 들으며 용기를 얻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날개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일어나라 아이야 / 다시 한번 걸어라 / 뛰어라 젊음이여 / 꿈을 안고 뛰어라 / 날아라 날아라 / 고뇌에 찬 인생이여 / 일어나 뛰어라 / 눕지 말고 날아라 / 어느 누가 청춘을 / 흘러가는 물이라 했나 /어느 누가 인생을 / 떠도는 구..

교통사고 이후 2024.09.26

사신(死神)과 아가씨

교통사고를 당하고 두 달 동안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무렵이었다. 의식을 되찾았다고는 하나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꿈이 생시 같고, 생시가 꿈같던 때였다. 어느 날 아침에 깜빡 잠이 들었다가 꿈에서 막 깨어났는데 마침 신부님이 방문하였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던지 꿈에서 뭘 보았는지 물어보기에 당시에 성대가 손상되어 말할 수 없던 나는 글 쓰는 판을 달래서 ‘연옥’, ‘토론’, ‘있음’이라고 썼다. 바로 잊을 뻔한 꿈이 아직도 생각나는 건 때맞춰서 방문한 신부님 덕분이다.  꿈에서 낯선 사람 둘이 연옥이 있다거니, 없다거니 하면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연옥이 있다는 사람이 토론에서 이기기를 바라며 지켜보고 있는데, 연옥이 없다는 사람이 논리적으로 밀리는 걸 보며 “그럼, 그렇지.” 하며..

교통사고 이후 2024.09.26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다리 절단 수술 후 나는 병실에서 깨어났다. 아직도 기운이 전혀 없다. 다리 쪽을 내려다보니 다리가 있어야 할 곳을 가린 침대 시트가 눈에 띈다. 왼쪽 다리가 있어야 할 곳이 푹 꺼져 있다. 난 이제 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왜 접니까? 오 하느님, 왜 하필이면 저냐고요? 신체 일부를 잃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대개 이와 같을 것이다. 고통과 분노 등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다.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감정도 이와 비슷하겠지만, 투병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에서도 잊힌다는 소외감과 죽음에 대한 공포심까지 더해진다면 그 고통이 어떨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내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했을 때도 그랬다. 입원 초기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큰 위로가 되었고 나를 위해 많..

교통사고 이후 2024.09.26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더라

중학교 도덕 시간에 배우기를 한국인은 예전부터 ‘수부귀다남(壽富貴多男)’을 누리는 걸 가장 완전한 행복으로 여겼다고 한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글귀에서 나온 것인데 딸이나 아들이 결혼할 때 복을 비는 마음으로 써 준 글귀라고 한다 忠孝傳家 (충효전가)--충성과 효도로써 가문을 이어감 壽福康寧 (수복강녕)--오래 살고 복을 누리며 건강하고 평안함 富貴多男 (부귀다남)--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으며 아들이 많음 이런 행복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지금까지 별로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 내가 오래 살 수 있을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일이고, 가진 재산도 없어서 유언장 쓰기 쉽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도 없고, 아들은 하나도 없고 딸 둘만 있어서 수부귀다남 중에서 아직은 어느 것 하나 가진 것이 없으니 전통적인 기..

교통사고 이후 2024.09.26

나는 하늘을 날았다

두 딸이 어린아이였을 적에 즐겨 본 만화 영화 중에 덤보 (Dumbo)가 있었다. 그 영화는 딸들뿐만 아니라 나도 워낙 좋아해서 수십 번을 함께 보았는데 귀가 유달리 커서 놀림을 받고 자라던 아기 코끼리 덤보가 까마귀의 도움을 받아 하늘을 날게 된다는 얘기가 재미있었다. 이 영화는 70년 전에 제작되었지만, 아직도 전 세계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날개가 없고 귀가 작은 나도 날아 본 적이 있다.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자르는 대수술을 받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두 달 후에 깨어난 지 얼마 후였다. 당시에는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강력한 진통제를 투여해서인지, 아니면 의식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아서였는지 늘 정신이 몽롱해서 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고,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았다. 가족이나 ..

교통사고 이후 2024.09.25

제삿날이 될 뻔했던 날

5년 전 오늘, 그러니까 2005년 6월 27일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생과 사의 경계선을 오락가락하다가 하느님 나라로 가기에는 때가 일렀던지 이 세상에 다시 머무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오랜 세월이 흐른 것 같은데 이제 겨우 5년이 흘렀을 뿐이다.  매일 밤, 오늘 밤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초조하고, 불안하고, 마음이 바빴었는데 다시 살아나서 여러 해가 지나니 이제는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다. 오늘이 어쩌면 제삿날이 될 수도 있었는데 고맙게도 다시 태어난 날이 되었다. 생과 사가 내 뜻대로가 아니고 모두 우리 주님이 주관하심을 환갑이 지나 어렴풋이 깨달았으니 뒤늦게 철이 들어가는 걸까?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행복이..

교통사고 이후 202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