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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몇 달 전에 어떤 고등학교 동창생이 동창 웹사이트에 ‘줄여서 보는 로마인 이야기’라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친구가 할 일은 없고 시간이 남아 돌아가니 이런 글을 올리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그가 올린 글을 훑어보았다. 처음 두어 회를 읽어 보니 결코 심심해서 쓴 글이 아니었다. 내용이 충실했고, 짜임새가 있었으며, 나름대로 확고한 역사관이 드러나 있었고,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글이 전문 역사학자가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나는 PDF로 보관하고 있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열다섯 권 중 처음 두 권만 읽고 말았던지라 그의 요약본이 반가웠다. 나이 드니 장시간 머리를 숙이기도, 책을 들고 활자에 시선을 집중하기도 힘들어서 한 권이라면 몰라도 열다섯 권씩..

이것저것 2022.09.03

딸들 생일에 즈음하여

며칠 전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작은딸이 마흔 번째 생일을 맞았기에 축하 전화를 했다. 40세나 되었건만 아직도 나는 전화할 때 가끔 ‘우리 예쁜 딸’이라고 부른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사는 게 우울해도 딸들의 전화를 받으면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외손녀나 외손자와 함께 딸들과 화상통화라도 한 날은 술 한잔 걸치지 않아도 행복하다. 아들이 없는 나는 아들과 딸을 대할 때 아버지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없지만, “딸을 가진 아버지는 (무엇이든 들어줘야 하는) 딸의 인질이나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아들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며, 거칠게 말하고 화를 내다가도, 딸이 아버지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아빠, 부탁이 있어요’라고 말하면 뜨거운 프라인 팬에서 버터가 녹듯이 마음이 풀어져 버린다.”라고 한 개리..

가족 이야기 2022.09.03

독창성에 관하여

고 박창득 몬시뇰은 50년 사제 생활의 대부분을 미국 뉴저지주에서 사목하며 보냈다. 오래 전 그분의 50년 사제 생활을 축하하기 위한 금경축 행사를 준비하며 그분이 쓴 글을 모아서 세 권 정도의 문집을 발행하려는 모임을 여러 차례 가졌다. 수많은 강론 기록과 가톨릭 다이제스트 등의 책에 실린 글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기에 그만한 분량의 글을 모으는 게 그리 어렵지도 않았고, 꾸밈없는 그분의 글을 좋아하는 신자들도 많았기에 그 작업에 별다른 난관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분의 반대에 부딪혀서 문집 발행이 무산되었다. 반대 이유가 이러했다. “내가 많은 글을 쓰기는 했지만, 그 글들은 성경이나 다른 훌륭한 분들의 좋은 글이나 말씀에 영향을 받은 것이므로 나의 독창적인 글이라 볼 수가 없고, 이미 다..

이것저것 2022.09.03

대한민국에서 지금 아이를 낳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유명한 동물학자인 최재천 교수의 유튜브를 보다가 ‘대한민국에서 지금 아이를 낳는 사람은 바보입니다’라는 내용이 좋기에 아래와 같이 요약해서 소개한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아이를 낳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아무 계획 없이 아이를 낳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지요. 저출산 현상을 진화적 적응이라는 면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겁니다. 개인적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아이를 기를 능력이 될지, 아이 양육을 위해 주변 환경이 얼마나 받쳐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애를 낳으면 잘 키워낼 수 있을까? 고민이 되고 그게 계산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도 과감히 출산하는 사람은 정말 애국자인 거지요. 하지만 생각 없이 애를 낳는 건 현명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이나 출산에 앞서 돈 계산이 앞서지요. 하지만 ..

이것저것 2022.09.03

다람쥐의 횡액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짐승은 다람쥐 아니면 개똥지빠귀(American Robin)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요즈음 산책길에서 나무를 오르내리거나 길바닥을 뛰어가는 다람쥐를 흔히 볼 수 있다. 다람쥐라는 말의 어원은 ‘ㄷᆞ(아래 아)ㄹᆞㅁ+쥐로서, ‘ㄷᆞㄹᆞㅁ’은 ‘달리다(走)’라는 뜻인 ‘ㄷᆞㄷ다’의 명사형이라고 하니, 재빠르게 잘 달리는 쥐라는 뜻으로 생긴 단어로서, 현대어로 굳이 바꾸면 달리는 쥐 정도가 된다고 한다. 집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람쥐는 두 종류가 있다. 몸집이 쥐보다 조금 크고 꼬리가 몸길이 만큼 긴 회색 다람쥐는 영어로 Squirrel이라고 하는데 긴 꼬리를 나풀거리며 팔짝팔짝 뛰다가 나를 만나면 힐끔 쳐다보며 머뭇거리다가는 바로 뛰어간다. 때로는 별..

미국 생활 2022.09.03

눈 안의 사과

성경을 읽을 때 영한대역 성경을 사용하면 한글 번역에서는 모호했던 의미가 영문 성경에서는 분명해지는 걸 가끔 경험한다. 얼마 전 구약 성경에서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라는 구절을 보고 ‘왜 하필이면 눈동자에 비유했을까? 라는 의문을 품고 인터넷으로 조사하여 보았다. 눈동자는 매우 민감한 부분이라서 특별히 보호되어야 한다. 그래서 눈동자 쪽으로 무언가가 날아올 때, 눈꺼풀은 반사적으로 닫히고, 머리는 돌아가고, 손은 그 물체를 막으려고 움직인다. 우리의 시력은 소중하므로 우리의 몸이 그 연약한 부위가 상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작용하는 것이다. ‘Apple of one’s eye’는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 또는 소중한 사물을 일컫는 말로서, 예를 들면 ‘The youngest daughter wa..

신앙 생활 2022.09.03

노인과 바다를 읽고

새벽 네 시에 잠에서 깨었다. 깨기 직전에 무슨 꿈을 꾸긴 꾸었는데 생각나지 않으니 분명히 개꿈이었을 거다. 나이 드니 새벽에 잠에서 깨면 다시 잠을 이루기 어렵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서 며칠 전부터 사전을 찾아가며 읽고 있는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 ‘노인과 바다’를 펼친다. 젊었을 적에 읽어 보았지만, 같은 작품도 나이 들어서 다시 읽으니 느낌이 다르다. 그런데 “노인들은 왜 일찍 깰까? 더욱더 긴 하루를 보내려고 그러는 걸까?” 노인과 바다에서 새벽에 잠이 깬 주인공이 던지는 질문이지만, 나도 같은 질문을 던져 본다.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권위 있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나오는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를 번역해서 인용해 본다. “주인공인 쿠바인 어부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물고기를..

이것저것 2022.09.03

냉장고에 화재 발생

‘위니아 딤채’ 김치 냉장고에 화재가 발생한 사례가 지난 몇 년간 수백 건에 달한다는 신문 기사를 보니 40년 전 서비스 과장 시절에 겪은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금성 소형 냉장고에 가끔 불이 났다. 모두 냉장고 부품에 불이 붙었다가 꺼지는 정도였을 뿐, 다른 데로 번져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객에게서 그런 신고가 접수되면 바로 직속 상관에게 보고한 다음 경험 많고 설득력이 뛰어난 서비스 기사를 현장에 파견했다. 그러면 서비스 기사는 “제품을 대량 생산하다 보면 어쩌다 한두 개 정도는 이런 불량품이 나올 수 있다. 바로 새 제품으로 교환해 드리겠다.”고 약속하고는 대리점에서 새 제품을 빌려서 바로 당일로 고객에게 인도하면, 대개 고맙다는 인사까지 받으며 원만하게 처리되곤 했..

시간여행 2022.09.03

나는 꼰대일까

체육관에서 자주 만나는 프랭크 할아버지는 지팡이 한 개를 짚고 느릿느릿 걷는 모습으로 보아 8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데, 만날 때마다 나는 그를 그냥 ‘프랭크’라고 부르고 그는 나를 보면 ‘Hello, Buddy(친구)’라 부르며(내 이름을 잊은 것 같다) 인사한다.낯 익은 미국인과 인사할 때는 특별한 경칭 없이 대개 이름을 부른다. 그들은 나를 그냥 내 미국식 이름인 ‘Steve’라고 부르고 친숙하지 않은 이가 격식을 차린다며 ‘Mr. Kim’이라고 부를 때도 있지만, 그럴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화할 때 상대방의 나이에 따라 표현을 조금씩 달리하는 우리와는 달리 다른 사람의 나이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존댓말이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미국인들의 인간 관계는 우리보다는 편하고 유연한 것 같다. 그래서..

이것저것 2022.09.03

나는 개를 못 키우겠네

우리 이웃에 개를 기르는 집이 대여섯 집이 있어서, 산책길에서 그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개와 함께 산책하는 그들을 보면 “개는 주인을 닮는다.”라는 말이 저절로 생각날 정도로 개와 주인의 모습과 성격은 서로 닮은 것 같다. 그러니까 사람 같은 개와 개 같은 사람이 산책하는 걸 보게 되는 셈이다. 미국인들이 반려견을 각별히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산책길에서 만나는 개 주인들의 표정은 마치 하기 싫은 숙제를 하러 나온 사람들처럼 그리 밝지 않다. 얼굴을 찌푸리고 머리를 흐트러뜨린 키가 작은 할머니와 함께 걷는 개는 앞머리의 털이 눈을 덮고 있고 체구도 자그마한데, 사람을 보면 눈치를 보며 할머니 뒤로 숨으려고 하는 겁먹은 듯한 모습이 주인을 빼닮았다. 작달막하고 좀 부산스러운 아저씨와 산책하는 개도 작달막한..

미국 생활 2022.09.03